‘젊은 연출가들의 요람’ 혜화동 1번지 4기를 이끌어갈 동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재엽(33), 박정석(36), 김혜영(30), 강화정(36), 김한길(34), 우현종(34)씨.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연극계 쿠데타 꿈꾼다
‘혜화동 1번지’ 극장. 행정구역으로 서울 종로구 혜화동 88-1번지에 위치한 이 작고 허름한 극장은 늘 젊다. 아니, 정확히 말해 늙을 틈이 없다. 대학로 극장 중 유일하게 동인제를, 그것도 ‘생물학적 동인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연출가들의 요람’ 혜화동 1번지가 4기 동인 시대를 맞게 됐다. 2001년부터 5년 동안 ‘장기 집권’을 했던 3기들로부터 최근 극장 열쇠를 넘겨받았다고 한다. 젊은 연출가 6인 “더럽거나 과격한 실험을”
“개인과 사회 조화 모색”
지향점 다르지만
“대학로 개혁” 한목소리 박정석(37) 강화정(36) 김한길(34) 우현종(34) 김재엽(33) 김혜영(30). 모두 30대다. 지난 8일 오후 대학로의 한 카페에 모인 6명의 젊은 연출가들에게선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싱그러운 향기가 났다. “제가 스무살 때, 1기 선생님들이 극장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는데 ‘와’하고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2기, 3기로 이어질 때는 그런 공간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고요. 이제 제가 그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 너무 기쁩니다. 책임감도 느껴지고요.”(김한길) 1993년, “연출가 중심의 소극장 연극을 탐색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극장을 창설했던 1기 동인(김아라 기국서 이윤택 채승훈 등)은 이제 ‘연극계의 어른’이 됐다. 1998~2000년 극장을 지켰던 2기(김광보 박근형 최용훈 등)는 <청춘예찬> 등의 명작을 길어올리며 대학로의 중추로 우뚝 섰고, 3기(김낙형 송형종 박장렬 오유경 양정웅 이해제 등)는 연극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주역으로 성장했다. 각 기수가 생명을 다했다고 판단할 무렵 다음 기수를 뽑는데, 한 사람이라도 추천을 해서 반대가 없으면 통과하는 식이다. 4기 동인들은 오는 3월21일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본격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앞으로 6개월씩 돌아가면서 극장장을 맡아 3년 동안 극장 살림을 챙길 것이다. 첫 극장장은 김재엽씨가 맡았다.
“3기들은 개별적인 작품활동은 열심히 한 것 같은데, 혜화동 1번지 동인으로서 함께 한 활동은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김재엽) 3기들은 스스로 “너무 다르다는 것이 3기 동인들의 특징”이라고 말할 정도로 개성이 강했다. 하지만 4기 동인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관객들이 싫어할 만큼 더럽거나 과격한, 그런 실험적인 작품들이 혜화동1번지 무대에 많이 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강화정씨나, “개인적인 심리와 사회적인 의미를 조화롭게 풀어내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우현종씨의 바람은 쉽게 접점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예술적 지향에 따라 헤쳐모였던 일제시대 문학동인들과는 달리, 혜화동 1번지 동인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동거인’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러나 동인은 무엇보다 ‘뜻’이 같아야 한다는 것을 이들은 절감하고 있다. 적어도 “하나의 작은 영화판이 돼가고 있는 연극계”(김재엽)에 대한 문제의식은 일치한다. “운동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대학로 전체에 퍼질 수 있는 개혁을 이끌어”(김혜영) 내고 싶어한다. 이들은 동인으로서의 동질감을 유지하기 위해 신문 형태의 소식지를 만들어 의견을 나누기로 했다. 함께 모꼬지도 하고, 최소한 한 달에 한번씩은 모임을 하기로 했다. 선배들 작품을 후배들이 연출하는 방식으로 1~4기 동인을 다시 한번 묶어 세우고, 극장 색깔을 살릴 수 있는 지방 극단의 공연을 유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내년쯤에는 극장 수리도 할 계획이다. “지난 12월 대학로에서 공연된 대부분의 작품이 사랑 얘기였어요. 대학로가 이제 문화를 소비하러 오는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기획을 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단계에 이른 겁니다. 따라 배우고 싶은 모범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우리들만이라도 내적으로 준비하고 천천히 풀어나가야죠.”(박정석)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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