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리듬 한입 떠넣으면 뭉클
영화 <칼리토>에서 뒷골목 깡패 인생을 끝내고 바하마로 가려던 칼리토(알 파치노)는 꿈에 닿기 한 치 앞에서 총 맞는다. 죽어가는 그의 눈엔 황혼에 물든 해변과 춤추는 연인의 환영이 스민다. 실은 형광등만 차갑게 번쩍이는 중이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슬픔은 웃자란다. 그렇다고 환상마저 버리자니 구차한 삶을 견딜 재간이 없을 때가 많다. 군악대서 뭉친 다섯남자, 라틴음악에 바짝 다가서 ‘따뜻한 악몽’ 담았다 김정범(31·피아노), 염승재(29·기타), 이동근(28·베이스), 윤재현(27·드럼), 김진환(28·퍼커션)으로 이뤄진 어쿠스틱 밴드 ‘푸딩’은 두 번째 앨범 <뻬자델로:악몽>에서 꿈 꾸는 사람의 슬픔을 담았다. 아프로쿠반, 삼바, 보사노바, 탱고 등 라틴 리듬의 달콤함 속에 섬뜩한 체념과 통증을 숨겨뒀다. “노곤한 꿈 속으로 들어가다 순간 현실이 확 느껴질 때, 그게 악몽인 것 같아요.”(김정범) 첫 앨범 <몰디브>보다 소리가 묵직해졌지만 주제는 연장선 위에 있다. “10년간 암 투병하던 어머니가 꼭 한번 몰디브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못 이루고 세상을 뜨셨죠. 몰디브는 있지만 제가 진짜 가고 싶던 그곳은 없어진 셈이에요.” 이질적인 것들 사이 충돌 또는 뒤섞임이 이 앨범을 관통하는 열쇳말이다. 염세적인 시선과 죽음에 대한 상징을 낭만적인 풍경 속에 집어넣어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한 곡 안에도 악기마다 다른 스타일을 우려낸다. 섬세하게 조율돼 묘한 여운으로 남는다. ‘나이트메어’의 노랫말은 환타지다. 구름 너머 햇살이 반짝이고 파도는 철썩인다. 리듬은 일렉트로니카 라운지처럼 싱그럽다. 기타는 브라질 리듬으로 삐딱한 선을 그린다. 그 밑으로 현악기들은 클래식의 묵직함을 안고 흐른다. 맘보, 차차 리듬엔 이탈리아어(‘스마일’), 프랑스어(‘더 넥타이스 컴플레인츠’)가 맞물려 명랑하다. ‘빅마마’ 신연아의 목소리, 전제덕의 하모니카, 허윤정의 첼로 등이 제자리에서 빛 난다. 사실 라틴 리듬은 새로울 게 없도록 유행을 타고 있다. 가요나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이 여유를 세련되게 각색해 빌려 쓴다. 그래도 ‘푸딩’의 사운드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여러 가지를 섞기에 앞서 라틴 전통에 바짝 다가선 흔적 때문이다. 브라질 사람 발치뇨 아나스타치오가 노래한 ‘라멘토 파트Ⅱ’에 대해 김정범은 “브라질 음악의 집합체로 앨범 속의 한 축을 삼고 싶었던 곡”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듯 어우러지는 음색을 풀어놓는 이들은 군악대에서 뭉쳤다. 인터넷에 올려뒀던 노래가 알려지면서 제대 뒤 딱 한번 공연하고 흩어지기로 했던 밴드는 앨범까지 냈다. 김정범은 이윤기 감독의 영화 <러브 토크>의 오에스티도 만들었다. “매체와 자본이 뿜어내는 수많은 이미지와 이야기에 둘러싸여 진짜 자신의 정서가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믿게 될 때가 많죠. 속는 거예요. 진실을 가리는 것들에 대한 분노가 있어요. 달콤하지만 비수 같은 음악을 꿈꾸는 데는 이런 분노가 한몫했죠. 개인의 진짜 감정을 어루만지는, 음악의 원래 기능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잡아 올린 게 아귀다툼하며 벌고, 먹어야만 하지만 그 너머를 힐끔거릴 수밖에 없는 대다수 사람들의 아련한 슬픔이다. 이 앨범의 인트로는 귀여운 피아노곡인 ‘요람 노래’다. 끝(‘더 라스트 플라잇 투 몰디브’)은 김정범이 3살 때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녹음한 목소리로 맺었다. “세 번째 앨범으로 몰디브 주제를 마무리할 거예요. 가족은 이 앨범들의 모티브 가운데 하나죠.” 사실 가족은 언제이건 돌아가고 싶은 푸근함 혹은 이에 대한 환타지다. 동시에 가장 개인적이고 아픈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가족은 이 앨범처럼 따뜻한 악몽을 닮았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스톰프 뮤직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