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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불가피한 전향, 최헌의 ‘오동잎’

등록 2006-01-11 17:32수정 2006-04-11 16:24

1973년 발매된 최현의 앨범
1973년 발매된 최현의 앨범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35) 최헌의 안타 행진: ‘트로트 고고’를 아시나요?
1970년대에 나온 음반들을 뒤적여 보면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김민기가 ‘도비두’ 시절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른 음원(<첫번 크리스마스>, 1970년), 고 김대환이 조용필과 함께 비틀스의 곡을 연주한 음원(<겟 백>, 1972년), 정태춘이 만들고 이수만이 부른 음원(<한송이 꿈>, 1977년) 등. 마치 비밀스러운 일기장을 읽는 듯한 쾌락을 안겨주는 것들이다.

이번엔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 그건 ‘조동진이 만들고 최헌이 부른 음원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음반이 ‘최헌과 이연실의 합동 음반이다’라는 사실이다. 조동진의 곡은 ‘가로등 불빛 아래’, ‘해 떨어기 전에’, ‘들리지 않네’ 등 세 곡이나 실려 있고, 이장희의 곡 ‘바람’도 있다. 이 가운데 ‘가로등 불빛 아래’는 ‘투 코리언스’가 부른 음원도 있어서 재미가 더 하다. (‘투 코리언스’는 김도향이 이끌었던 남성 듀엣이었다. 요즘 그의 근황에 대해서는 ‘내 라이벌은 비’라는 타이틀로 소개한 한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 보시길!).

이상의 사실에 대해 1979년 이후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한 조동진의 전력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솔로 가수로 나선 건 1979년 이후의 일이니 이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은 최헌에게 집중하자. 이 연재를 열심히 읽은 사람이라면 최헌이 ‘히 식스(He 6)’와 ‘검은 나비’ 등 인기 그룹 사운드에서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리고 1973년이라면 ‘히 식스’에서 ‘검은 나비’로 이적하던 무렵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 무렵부터 그룹에서 노래를 잘 하는 걸출한 보컬리스트가 있으면 그를 솔로 가수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던 셈이다. 이승철과 임재범과 김종서로 이어지는 전통인 셈이다.

그렇지만 이런 시도가 본격화된 것은 ‘1976년 이후’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사정을 간단하게 말한다면 1975년 이전처럼 음악 활동을 해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마초 파동 이후 음반에 대한 사전 검열이 강화되고, 이와 더불어 음악을 연주하는 공간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면서 ‘하고 싶은 음악을 자유롭게 연주하고 녹음하는 일’은 갈수록 힘들어져 갔다. 많은 이들이 음악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음악을 정말 직업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언제나 그랬듯 먹고 살기 위해 못 할 일은 별로 없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곡이 있었으니 ‘오동잎’이었다. 1975년 말에 음반으로 발표된 이 곡은 1976년 후반부터 기세를 몰아 가더니 1977년 초 5만장의 음반을 판매하면서 대마초 이후의 대박을 기록했다. 뽕짝풍의 멜로디와 고고풍의 리듬이 결합되어 당시 ‘뽕짝 고고’, ‘트로트 고고’라고 불린 이 ‘새로운’ 스타일의 주인공이 바로 최헌이었다. 소울과 사이키델릭을 연주하던 그룹 사운드 출신이 뽕짝을 부르는 일은 당혹스러운 것이었지만, 직업적 음악인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때 이 사람에게 돌을 던지고 싶은 사람은 헤비 메탈 밴드 출신으로 솔로 가수가 되어 발라드를 부르는 사람에게도 돌을 던져야 하리라.

‘전향’을 결행한 사람이 ‘가수 최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헌의 음반은 ‘안타 프로덕션’의 첫 작품이었는데, 안타 프로덕션은 ‘영 사운드’의 리더였다가 작곡가로 전업한 안치행이 대표를 맡고, 이태현과 김기표 등 ‘더 멘(The Men)’과 ‘검은나비’에서 활동하던 음악인들이 한데 모여 차린 사업체였다. 작명이 좋았는지 안타에서 제작한 작품들은 문자 그대로 ‘히트’ 행진을 계속했다. 최헌은 ‘오동잎’과 유사한 트로트 고고 스타일의 ‘앵두’와 ‘순아’, ‘가을비 우산속’, ‘구름 나그네’를 연이어 히트시켰고, 마침내 1978년 말 문화방송 10대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아직까지도 솔이나 록으로 출발한 음악인이 트로트를 부른 일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건 마치 성실했던 남편의 ‘외도’에 대한 평가처럼 인색해 왔다. 그런데 이런 전향 혹은 외도가 최헌의 개별적 케이스에 끝나지 않고 조용필, 최병걸, 김훈, 조경수 등까지 포괄한다면 이건 개인의 도덕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질문 하나 더. 젊은 시절 작곡가와 가수로 만났던 조동진과 최헌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었을까. 한 사람은 아티스트로, 다른 사람은 엔터테이너로 남았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아티스트가 더 불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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