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뒤엔 노랫말도 멜로디도 깊어지겠죠”
1998년 조성모(29)의 데뷔는 가요계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했다. 이병헌, 김하늘 등 스타를 모은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는 그 뒤 일종의 범례가 됐다. 댄스 음악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앳된 미성으로 첫 앨범 <투 헤븐>부터 200만장 넘게 팔아치우며 발라드 ‘왕자들’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물론 조성모의 노래 실력은 높이 살 만했지만 그의 화려한 출발은 미디어의 적절한 이용과 자본의 힘, 음반사의 기획력 등에 기댄 측면이 컸다.
2월 서울·일본등서
8년활동 총정리 콘서트
경력 20년쯤이면
‘조성모’ 라는 앨범 냈으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어린 막내동생 같던 조성모도 나이를 먹는다. 3월이면 군대로 떠나 쉼 없이 달려온 활동에 2년 동안 쉼표를 찍을 예정이다. 이에 앞서 2월 중순부터 제주도, 대구, 부산, 서울에 이어 일본 오사카, 도쿄까지 돌며 8년 활동을 정리하는 콘서트를 연다. “제 모습을 되짚어 볼 수 있도록 4부로 나눠 꾸밀 거예요. 방송 광고 등도 패러디 해서 재미를 보태려고요.” 정규 앨범 6장, 리메이크 앨범 2장, 오에스티들…. 그는 앨범마다 100만장 가까이 ‘대박’을 터뜨리며 승승장구해왔다. “자고 일어나 스타가 됐으니 행운아죠. 아이엠에프 직후에 데뷔했는데 첫 앨범이 잘 안됐다면 식구들이 길에 나앉을 판이었어요. 중산층이었는데 어느 날 집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죠.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래도 후회하는 건 없냐고 묻자 “쉬지 않은 것”이라고 답했다. “설렘과 재미로 시작한 일인데도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죠. 가수 조성모가 된 21살에 멈춰버린 느낌이었어요.” 그는 “이미지는 바뀌어 왔을지라도 음악적 변화는 일구지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뮤직비디오만 해도 슬픈 노래로 시작해서 남녀 주인공이 꼭 죽잖아요. 저도 제 자신을 답습했지만 후배들도 따라하는 것 보면 안타까워요.” 그가 군대 가는 걸 오히려 즐기는 까닭은 그 기간에 가수 조성모를 거리 두고 바라보며 재충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2년 뒤엔 노랫말도 멜로디도 좀 더 깊어지지 않을까요?” 지난해 11월 내놓은 리메이크 앨범 <클래식 1+1>은 그가 음악적 깊이에 대해 고민하고 변화를 꿈꾸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사실 지난해엔 리메이크 앨범이 봇물을 이뤘고 이 맥락에서 그의 작업에도 ‘좋은 곡 재탕으로 쉽게 가자는 것 아니냐’는 날선 시선이 꽂히기도 했다. 하지만 ‘편지’의 김광진, ‘사랑일기’의 하덕규,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의 장기호 등과 함께 노래하고 편곡한 작업은 꽤 신선했다. “자기 만족으로서 의미가 커요. 타협하지 않고 음악으로만 승부를 거는 선배들 보고 감동했어요. 소주 걸치며 ‘앞으로 음악인이 되라’는 조언도 해주셨어요. 1·2집 때 작두 타는 기분으로 녹음했는데 이번에도 칼날 위에 선 듯했죠.” 이들을 끌어 모으는 작업도 만만치 않아 김광진의 경우엔 그야말로 삼고초려 했다고 한다. “데뷔 땐 잘 보이려고 했어요. 연예프로그램 ‘출발 드림팀’에서 열심히 달린 것도 그래서예요. 이제 유지보다는 제시하고 싶어요. 진지함이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키는 시대이고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잘 팔리지만요. 제 안에서 위안을 주는 깊은 소리를 끌어내고 싶어요.” 네 번째 앨범 <노 모어 러브>에 작사(‘네버’), 작곡(‘그대는 모릅니다’ 등)한 노래를 넣고 일본 진출을 이제까지 미룬 이유도 비슷하다. “음악적으로 탄탄한 일본의 음반제작사나 음악인과 시작하려고요. 이번 일본 공연이 그 발판이 될 거예요. 경력이 20년쯤 되면 제가 만든 노래들로 채운 <조성모>라는 앨범도 냈으면 해요.”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정용일 <스카이라이프> 기자 yongil@hani.co.kr
8년활동 총정리 콘서트
경력 20년쯤이면
‘조성모’ 라는 앨범 냈으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어린 막내동생 같던 조성모도 나이를 먹는다. 3월이면 군대로 떠나 쉼 없이 달려온 활동에 2년 동안 쉼표를 찍을 예정이다. 이에 앞서 2월 중순부터 제주도, 대구, 부산, 서울에 이어 일본 오사카, 도쿄까지 돌며 8년 활동을 정리하는 콘서트를 연다. “제 모습을 되짚어 볼 수 있도록 4부로 나눠 꾸밀 거예요. 방송 광고 등도 패러디 해서 재미를 보태려고요.” 정규 앨범 6장, 리메이크 앨범 2장, 오에스티들…. 그는 앨범마다 100만장 가까이 ‘대박’을 터뜨리며 승승장구해왔다. “자고 일어나 스타가 됐으니 행운아죠. 아이엠에프 직후에 데뷔했는데 첫 앨범이 잘 안됐다면 식구들이 길에 나앉을 판이었어요. 중산층이었는데 어느 날 집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죠.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래도 후회하는 건 없냐고 묻자 “쉬지 않은 것”이라고 답했다. “설렘과 재미로 시작한 일인데도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죠. 가수 조성모가 된 21살에 멈춰버린 느낌이었어요.” 그는 “이미지는 바뀌어 왔을지라도 음악적 변화는 일구지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뮤직비디오만 해도 슬픈 노래로 시작해서 남녀 주인공이 꼭 죽잖아요. 저도 제 자신을 답습했지만 후배들도 따라하는 것 보면 안타까워요.” 그가 군대 가는 걸 오히려 즐기는 까닭은 그 기간에 가수 조성모를 거리 두고 바라보며 재충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2년 뒤엔 노랫말도 멜로디도 좀 더 깊어지지 않을까요?” 지난해 11월 내놓은 리메이크 앨범 <클래식 1+1>은 그가 음악적 깊이에 대해 고민하고 변화를 꿈꾸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사실 지난해엔 리메이크 앨범이 봇물을 이뤘고 이 맥락에서 그의 작업에도 ‘좋은 곡 재탕으로 쉽게 가자는 것 아니냐’는 날선 시선이 꽂히기도 했다. 하지만 ‘편지’의 김광진, ‘사랑일기’의 하덕규,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의 장기호 등과 함께 노래하고 편곡한 작업은 꽤 신선했다. “자기 만족으로서 의미가 커요. 타협하지 않고 음악으로만 승부를 거는 선배들 보고 감동했어요. 소주 걸치며 ‘앞으로 음악인이 되라’는 조언도 해주셨어요. 1·2집 때 작두 타는 기분으로 녹음했는데 이번에도 칼날 위에 선 듯했죠.” 이들을 끌어 모으는 작업도 만만치 않아 김광진의 경우엔 그야말로 삼고초려 했다고 한다. “데뷔 땐 잘 보이려고 했어요. 연예프로그램 ‘출발 드림팀’에서 열심히 달린 것도 그래서예요. 이제 유지보다는 제시하고 싶어요. 진지함이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키는 시대이고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잘 팔리지만요. 제 안에서 위안을 주는 깊은 소리를 끌어내고 싶어요.” 네 번째 앨범 <노 모어 러브>에 작사(‘네버’), 작곡(‘그대는 모릅니다’ 등)한 노래를 넣고 일본 진출을 이제까지 미룬 이유도 비슷하다. “음악적으로 탄탄한 일본의 음반제작사나 음악인과 시작하려고요. 이번 일본 공연이 그 발판이 될 거예요. 경력이 20년쯤 되면 제가 만든 노래들로 채운 <조성모>라는 앨범도 냈으면 해요.”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정용일 <스카이라이프>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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