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아줌마극단 ‘애둘란’ 창단공연 연습실

등록 2006-01-18 17:15수정 2006-01-19 13:49

[100℃르포] 아줌마들 무척 행복해 하다 “연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세상에 못 말릴 것이 광대가 되려는 사람들이다. 넘쳐나는 ‘끼’를 주체못해, 남들 앞에 내보여야 직성이 풀리는 ‘배우 지망생’들.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 뻔했다”든가, “머리를 깎이고 한달 동안 가택연금을 당했다”든가 하는 얘기는 흔히 들을 수 있는 무용담이다. 그렇다면, 남편과 애들 뒷바라지 하느라 수십년 동안 꿈을 접어야만 했던 ‘애 둘난 여사’들은 얼마나 불행했을까? 나이 마흔이 넘어 그 꿈을 다시 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면 또 얼마나 행복할까?

지난 13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의 연기학원 엠티엠(MTM·대표 김민성) 사무실. ‘주부들을 위한 연극’을 표방하는 ‘엠티엠 애둘란 극단’이 창단 공연 <강남역 네거리Ⅱ>를 연습하고 있는 곳이다. 자녀를 스타로 만들려는 부모들로 복도는 북적댔고, 벽면은 이미 스타가 된 선배들의 사진으로 도배가 돼 있다. 심은하, 김희선, 최진실, 김민종 등 오래된 얼굴부터, 강혜정, 윤진서, 남궁민, 이준기 등 새 얼굴까지. ‘연예인 사관학교’다운 화려한 진용이다.

인파를 헤치고 연습실(엠티엠 제1극장)에 들어서자 환자복을 입은 ‘배우’들이 무대 위 의자에 앉아 있다. ‘나 준비 됐어요~’하는 표정들이다. ‘아줌마’들의 철두철미한 준비성 덕에, 분장을 비롯한 준비 과정을 취재하려던 애초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만약에 약속 시간을 1시로 앞당겼다면 우린 12시에 다 준비하고 앉아 있었을 거에요.”

수영강사를 ‘스토킹’하는 갱년기 여성 ‘여진’ 역을 맡은 육미라(44)씨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육씨는 광고모델로 활동하다 “24살 때 괜찮은 남자를 만난 김에” 결혼을 했고, “이제 내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는, 전형적인 ‘애둘난 여사’다.

제목요? ‘강남역 네거리 Ⅱ’

“(작품 속 역할이) 꼭 제 얘기 같아요. 애들은 다 컸다고 지들끼리 놀고, 남편은 돈 버느라 바쁘고. 같은 아파트 아줌마들도 수영장 가서 살거든요. 거기서 수다 떨면서 스트레스 해소하고 허무감을 달래는 거죠. 그래도 전 행복해요. 연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강남역…>(작·연출 이예리)은 1999년 대학로에서 공연해 인기를 끌었던 싸이코 드라마다. 우울증에 걸린 주부, 매맞는 아내, 유아 성도착증 변태 교수 등 같은 날 경찰서 신세를 졌다가 정신병원으로 이송된 ‘환자’들의 치료과정을 보여주는데, 마지막엔 의사가 미쳐버린다는 얘기다.


창단 기념 공연을 연습하고 있는 ‘엠티엠 애둘란 극단’ 단원들. 연습이 시작되자 어두웠던 연습실은 이내 열기로 가득찼다.
창단 기념 공연을 연습하고 있는 ‘엠티엠 애둘란 극단’ 단원들. 연습이 시작되자 어두웠던 연습실은 이내 열기로 가득찼다.


“아줌마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연극이에요. 참고 억눌러온, 가슴 답답한 얘기를 끄집어내죠. 그 일을 내가 대신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통쾌하고 재미있어요. 우울증 같은 건 다 날아가버릴 것 같아요.”(이미령·39·사이비교주 ‘영선’ 역)

매맞는 아내 ‘청연’ 역의 변정신(48)씨는 눈가를 “시퍼러둥둥하게” 분장하고, 공연 내내 “잘못했어요”를 연발했다. 변씨는 연기를 하려고 ‘기러기 엄마’를 자처한 경우다. 국책은행에 다니는 남편이 미국으로 발령을 받아 다음달이면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데, 변씨 홀로 서울에 남기로 했다.

“미국 가면 말도 안 통하는데, 집에서 밥이나 해주면서 살려니 너무 답답할 것 같아서요. 처녀 때부터 하고 싶어했던 일이니까, 이제 남편이 이해해줘요. 연극 하면서 살라고 방도 얻어줬어요.”

나 준비 됐어요

공연이 한 달이나 남은 탓인지, 배우들의 대사는 완전하지 않았다. 연출가 이예리(36)씨는 “옆에서 누가 대사 좀 쳐(읽어)”주라고 연방 닦달했다. 이씨는 전날 ‘단합 대회’에서 마신 술 탓인지 심하게 체한 상태였다. 틈만 나면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이병규(40·변태 교수 역)씨는 땅문서가 든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얼마나 ‘격렬한’ 단합대회였는지 알만했다.

‘애둘란 극단’이라고 ‘애둘난’ 아줌마들만 모인 것은 아니다. ‘애하나난’ 아줌마도 있고, ‘애둘날’ 처녀, 총각도 있다. 극단 이름은 조지환(28·의사 역)씨가 무심코 던진 말에서 따왔다. 조씨는 원조 ‘애둘난 여사’ 개그우먼 조혜련씨의 동생이다.


조씨는 “오늘 봐서 아시겠지만, 아줌마 세분만 모이면 그야말로 ‘앤들리스 토킹’”이라며 “원래 우리(남자들)도 한 입담들 하는데, 여기선 그냥 죽어지낼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처녀 총각도 있다

이들은 모두 출연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평소 알고 지내는 피부과 의원이며, 식당에 전화를 걸어 ‘협찬’ 따내기에 열심이다. 연출가 이예리씨도 영화계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는 어떤 ‘형님’의 자서전을 써주고 받은 돈을 제작비에 보태기로 했다.

“돈도 안 되는데 왜 하냐구요? 그렇게 묻는 건 하늘에 해가 왜 떠 있냐고 묻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우린 연기가 너무 좋아서, 미쳐서 하는 거에요. 연기를 하면 그냥 너무 즐거워요.”(이미령)

“연극으로 사회 환원을 한다”는 극단 설립 취지에 따라 무료 공연을 하기로 했다. 정규 공연이 끝난 뒤에는 양로원이나, 사회복지관, 재활단체 등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출장 공연을 할 예정이다. 2월17~19일 서울 삼성동 서울종합예술학교 창조관. (02)780-7676.

글·사진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