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독주회 여는 허승연씨
10대 시절부터 파리 사교계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스물네살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1811~86)는 여섯살 연상의 유부녀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함께 스위스로 도피여행을 떠난다. 동양인 처음이자 세계 7번째로 리스트 ‘순례의 해’ 연작 녹음
발매 기념으로 21일 연주회 연주맞춰 유인촌씨 시 낭독도 연인은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동거하며 딸 둘과 아들 하나까지 두었으나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은 심한 말다툼 끝에 9년만에 허무하게 깨어진다. 여행을 즐겼던 리스트는 1865년부터 로마에서 하급 성품의 신부로 지내기도 했지만 반은 프란시스코회 수도사로, 반은 집시로 유럽을 떠돌며 연주와 작곡으로 불꽃처럼 삶을 태웠다. 그는 1835년부터 1879년 사이에 자신이 여행한 곳의 풍경이나 사건, 그 고장과 관계있는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작곡한 피아노곡 <순례의 해> 연작을 남겼다. “리스트는 자신에 대한 갈등과 욕망이 몹시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사랑을 항상 필요로 했고요. 또 어렸을 적부터 마음이 안좋을 때는 곧바로 성당으로 가서 회개하는, 종교에 빠지고 싶은 욕망이 간절한 사람이었죠, 말년에 신부가 되면서도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을 지킨, 영원히 성스러운 신부가 되지 못했습니다. 물론 결혼도 못했지만요.” 유럽무대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성 중견 피아니스트 허승연(40·취리히 음악원 종신 부학장)씨가 리스트의 <순례의 해> 1, 2, 3집으로 오는 21일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4년만에 독주회를 연다. 이 연주회는 그가 라자 베르만, 니콜라스 안젤리시 등에 이어 동양인으로는 처음이자 세계에서는 일곱번째로 리스트의 <순례의 해> 전집음반을 독일의 명문 레이블 아르스무지치에서 녹음해 지난 5일 발매한 것을 기념해 마련됐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16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리스트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처음 <순례의 해>를 접하면서 여지껏 생각했던 리스트가 아닌 다른 리스트를 발견하고 감탄했다”면서 “화려한 피아니스트 생활을 하며 그토록 갈등이 많았던 리스트, 더 우리와 가까운 리스트의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그는 “유럽에서 지난 3년간 꾸준히 <순례의 해> 독주회를 해왔다”면서 “물론 전집을 한꺼번에 녹음하진 않았지만 녹음 준비를 하면서 음악을 성숙시키기 위해 연주회 프로그램에 자주 넣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처음에 이 작품을 연습하며 리스트를 더 이해하기 위해 그와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책들을 먼저 읽었다. 리스트와 마리 다구 백작부인이 여행했던 스위스와 이탈리아, 또 한동안 리스트가 머물면서 작곡을 했던 로마의 에스테 빌라까지 찾아갔다. “2004년 12월에 로마의 에스테 빌라를 방문했습니다. 그가 앉았던 의자, 그가 바라보던 소나무, 분수들을 보면서 다시금 말년의 리스트를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매번 지나치는 소나무를 보면서 그가 자기 인생의 파도를 생각했다는 소나무의 거대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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