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70년대 가요계의 다니엘 헤니

등록 2006-01-18 17:51수정 2006-04-11 16:24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36) 윤수일과 함중아
1970년대 후반 이른바 트로트 고고 붐은 지난 회에 살펴본 최헌 외에도 여러 스타들을 낳았다. 그 가운데 윤수일과 함중아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을 설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각각 ‘아파트’와 ‘내게도 사랑이’라는 빅 히트곡을 부른 가수라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이런 ‘7080 히트곡’을 모르는 세대에겐 ‘그 시절 가요계의 다니엘 헤니와 데니스 오였다’는 비유도 가능할 듯하다. 백인 혼혈이란 이채로운 배경을 가진 대중스타였다는 뜻이다.

윤수일과 함중아는 혼혈 가수란 특징 외에도 같은 그룹 사운드 출신이란 이력도 공유하고 있었다. 부연하면 이들은 1970년대 초중반 펄벅재단의 주선으로 결성된 혼혈인 그룹 ‘골든 그레입스’에서 활동했다. 신중현이 ‘지도’하고 함중아·함정필 형제가 이끌던 ‘골든 그레입스’는 1972년 독집 <즐거운 고고 파티(신중현 사운드 3)>를 발표하고 ‘신중현과 골든 그레입스’라는 이름으로 방송과 고고 클럽 무대에 올라 환각적이면서 역동적인 사이키델릭 록 음악으로 적잖은 인기를 누린 바 있다.

함중아는 ‘골든 그레입스’의 후신으로 ‘양키스’를 만들어 1975년 데뷔작 <양키스 고고 크럽 초대>를 내놓았다. 함중아의 자작곡과 리메이크 곡(경음악)으로 구성된 이 음반은 신중현의 음악적 그림자란 점만 제외한다면 ‘고고 클럽 전성기의 사운드트랙’으로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초대’였다. 몇 차례 언급했듯이 대마초 파동 이후 가요계는 트로트 고고로 무게중심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트로트 선율과 고고 리듬의 결합을 일종의 혁신으로 평가하든, 변절로 평가하든 1970년대 후반 그룹 사운드 (출신) 음악인들 누구도 트로트 고고란 트렌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사실은 불변이다. 그로부터 불과 2~3년 전만 해도 환각적 록 에너지를 뿜어대던 함중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궁금하다면 그의 대표곡인 ‘내게도 사랑이’와 1976년 이전의 곡들을 비교해 들어보면 안다.

함중아보다 다소 늦게 ‘골든 그레입스’의 기타리스트로 음악계에 공식 입문한 윤수일은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물론 1980년대 전반기에 자신의 밴드를 결성해 검은 선글라스에 가죽옷 차림으로 ‘아파트’, ‘제2의 고향’, ‘황홀한 고백’, ‘환상의 섬’으로 상종가를 치던 때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1976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그룹 사운드 경연대회에 참가해 1등상을 차지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계기로 안타 프로덕션에 뽑혀 이듬해 ‘사랑만은 않겠어요’가 실린 데뷔 음반을 발표하지 않았더라도, 그래서 1978년 3대 텔레비전 방송국의 주요 가수상을 받지 않았더라도 1980년대 빅 스타 지위가 가능했을까.

‘윤수일과 솜사탕’의 데뷔작을 재평가한다면, 그것은 전형적인 트로트 고고 ‘사랑만은 않겠어요’(안치행 곡) 때문만은 아니다. ‘예상과 달리’, 나머지 수록곡들이 ‘장경수 작사, 함정필 작곡’의 그룹 내부 창작곡들이며 음악 스타일 역시 트로트 고고와는 거리가 먼 그룹 사운드다운 풋풋한 사운드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훗날 윤수일은 당시를 회상하며 “내 의지와는 별개로 기획실에서 장사가 되는 쪽으로만 분위기를 몰고 갔다. ‘사랑만은 않겠어요’ 같은 트로트 풍의 노래들도 그때 나온 것들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이 진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지 여부는 각자 판단할 문제지만.

정리하면 ‘윤수일과 솜사탕’의 데뷔 음반은 ‘1할의 트로트 고고와 9할의 그룹 사운드’라고 볼 수 있다. 윤수일을 스타 가수로 견인한 ‘사랑만은 않겠어요’나, 히트하진 못했지만 수록곡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그룹 사운드 풍 창작곡들 중 어느 한쪽을 폄하하거나 과장할 이유는 없다. ‘그 시절’은 아직도 충분한 연구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우/대중음악 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