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닉’ 낸 이한철
이한철(34)은 보기 드문 재주꾼이다. 1993년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이듬해 대학가요제에서 데뷔한 뒤 온갖 장르를 맛봤다. 펑크, 모던록, 라틴…. 솔로로 활동하다 듀오 그룹 ‘지퍼’를 만들더니 록밴드 ‘불독맨션’까지 내달렸다. 복도 많아 남들은 창작의 고통으로 머리 뜯고 애간장 태우는데 그는 ‘그분이 오신 날’이면 5~6곡씩 만들기로 유명하다. 얄밉게도 노래는 곰탕이 아니어서 품질이 시간에 비례하진 않는다. 재능을 스프링처럼 달고 어디로든 튕겨 다니던 그가 최근 단출한 어쿠스틱 소리에 주변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5곡에 모아 미니앨범 <올가닉>을 내놨다. “악기 편성, 멜로디 등 핵심만 남겼어요. 저의 음악적 ‘재부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상의 작은 부분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앨범 8장을 낸 그가 곡을 만들 때마다 ‘한국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음악적 소명은 무엇일까’라는 숭고한 고뇌를 했을 리는 당연히 없다. 귀에 꽂히는 음악을 듣다 그냥 힘이 넘쳐 노래했을 것이다. 그런데 앨범엔 당시 또는 조만간 대중음악계를 들썩이게 만들 장치들이 들어 있었다. 두 번째 앨범 <되는 건 되는 거야>(1997년)는 일부러 거칠고 소박하게 연주하는 펑크록이었는데 바야흐로 ‘그린데이’가 주가를 올리고, ‘섹스피스톨즈’의 앨범이 재발매 붐을 탈 때 나왔다. 장기영과 함께 만든 ‘지퍼’의 앨범 <매거진>(1998년)에는 일렉트로니카부터 자메이카 리듬까지 섞여 있었다. 곧 클럽을 후끈 달아 올릴 은둔 고수들인 셈이다. 10년쯤 뒤 지금 한국을 돌아보며 ‘복잡하고 피곤한 환경에서 일상의 작은 기쁨에 눈을 돌리는 단순하며 포근한 음악의 시대가 다시 왔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면, 이번 앨범도 그 예가 될 듯하다. 따지고 보면, 베테랑 가수 이은미, 유열도 지난해 느림을 앨범 제목으로 삼았다. 이한철은 “내가 욕심이 많고 실증을 잘 내서”라고 말하지만, 거창한 의미 부여를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냥 듣자면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감돌고 곧 흥얼흥얼 따라 부르게 되는 노래들이 <올가닉>을 채웠다. ‘도은호의 사랑’은 이한철 밴드의 베이시스트 도은호가 일본 여성 노리꼬와 말도 안 통하면서 사랑을 이어가는 이야기다. “수줍어 해서 놀리려고 연습실에서 기타 치며 ‘노리꼬 노리꼬’ 하다가 만들게 됐어요.” ‘슈퍼스타’는 어느 고교 야구 선수를 토닥여 주는 노래다. “이번 앨범 내고 매니저도 못 구했었거든요. ‘이거 될까’ 하다가 이 노래 나오면 저도 ‘어떻게 되겠지’ 그렇게 되요.”
귀 기울여 들어보면 장르는 여러 가지로 변했지만 앨범들에선 관통하는 ‘이한철스러움’도 느껴진다. 따라 부를 만한 낙천적 흥겨움 같은 것이다. 수록곡의 주인공이었던 고교 야구 선수는 야구를 그만두고 방망이 2개를 그에게 선물했다. 도은호는 한국말로 일본어 발음을 적어 독백에 가까운 대화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한철은 이번 앨범의 연장선에서 올 여름 정규 앨범을 내고 ‘불독 맨션’의 이름으론 내년께 팬들을 만날 계획이다. 3월4일 서울 홍대 앞 롤링홀에선 콘서트를 벌이고 교육방송에서는 그의 데뷔 12주년 특집 녹화 콘서트가 2~3월께 방송된다. 앨범이 많이 팔리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공연에 사람이 많이 차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괜찮아, 잘 될 거야.”(슈퍼스타) 그의 노래엔 이런 느긋함이 배 있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서울음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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