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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잠식한 이 상황, 만우절 거짓말이었으면…

등록 2020-09-07 17:14수정 2020-09-08 02:38

[사진 대가 어윈 올라프 신작전 ‘2020년 만우절’]
어윈 올라프의 신작 <4월의 바보 2020-오전 9시45분>. 자신이 암스테르담에서 겪은 코로나 이후의 공포스런 상황을 연극적인 연출 사진으로 기록했다.
어윈 올라프의 신작 <4월의 바보 2020-오전 9시45분>. 자신이 암스테르담에서 겪은 코로나 이후의 공포스런 상황을 연극적인 연출 사진으로 기록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으로 변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작업해온 세계적인 사진 작가 어윈 올라프(에르빈 올라프·60)는 지난 3월 코로나19가 유럽을 휩쓸자 ‘거대한 미지의 것’에 의해 세상이 뒤집혔음을 직감했다. 유전성 폐 질환을 평생 앓아온 그는 호흡부터 신경을 써야 했다. 계단을 오르는 건 포기했다. 사무실 스태프와 부인 외에는 만나지 않고, 낯선 곳에도 가지 않게 됐다.

더 충격적인 건 암스테르담이 록다운(도시봉쇄)되기 며칠 전인 3월 말, 슈퍼마켓을 갔다 온 경험이었다. 선반 위에 식재료와 생필품이 보이지 않았다. 상상해본 적 없는 상황이 펼쳐지자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아, 내가 만우절의 바보였으면 좋겠다. 이 풍경이 속임수였으면…. 만우절 바보였으면 좋겠다는 감정을 사진으로 어떻게 표현하지?’

어윈 올라프의 신작 &lt;4월의 바보 2020-오전 10시 05분&gt;.
어윈 올라프의 신작 <4월의 바보 2020-오전 10시 05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공근혜 갤러리에서 지난주부터 열린 어윈 올라프의 신작전 ‘2020년 만우절’은 처음 느낀 공포감을 표현해야겠다는 절실한 욕구에서 출발했다. 코로나가 덮친 3월 말의 음울한 암스테르담에서 폐 질환을 앓는 작가가 살아낸 일상을 부조리극 무대처럼 연출한 사진 10여점이 내걸렸다.

시공간적 배경은 4월1일 오전 9시15분~오전 11시30분 암스테르담의 슈퍼와 거리, 공원, 작가의 방이다. 어릿광대처럼 분칠을 하고 고깔모자를 쓴 작가는 코로나19 사태가 낳은 공포와 불안에 휘둘린 모습을 연속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 텅 빈 슈퍼의 주차장을 걸어 매장에 들어가 텅 빈 진열대를 보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무표정하게 앉은 직원을 두고 앞을 바라본다. 슈퍼를 나와 적막한 공원 벤치에서 숲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가 벽을 바라보고 서서 사진을 찍는다.

전시장에 사진들과 함께 상영 중인 &lt;4월의 바보&gt;동영상물의 스틸 컷. 격리된 방 안 탁자 주위를 앉았다 일어섰다 서성거리면서 불안에 주눅 든 모습을 보이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장에 사진들과 함께 상영 중인 <4월의 바보>동영상물의 스틸 컷. 격리된 방 안 탁자 주위를 앉았다 일어섰다 서성거리면서 불안에 주눅 든 모습을 보이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16~17세기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 등이 그린 네덜란드 정물화·풍경화 같은 회화적 느낌으로 다가온다. 화면을 뒤덮는 것은 온통 검푸른 빛이고 정교하게 조절된 광선과 인물의 배치가 코로나 시대의 불안을 성찰적이고 차분하게 바라보게 한다.

작가는 2000년대 이후 세계가 처한 현실적 문제와 미술사적 형식의 계승에 대한 고민을 함께 녹여내며 <로열 블러드> <비탄> <로케이션> 같은 문제적 연작을 만들어왔다. 정제된 회화적 구도 안에 역사적인 유명 인물, 세계 주요 도시 공간을 둘러싼 갈등과 욕망 등을 끄집어낸 연출 사진으로 호평을 받아왔다. 그의 내공은 이번 코로나 연작에서도 빛을 발한다.

암스테르담 어윈 올라프 스튜디오에서 전송해온 최근 작가의 사진. 머리에 고깔모자를 쓰고 뒤돌아선 자신의 자화상 사진 앞에 서 있다.
암스테르담 어윈 올라프 스튜디오에서 전송해온 최근 작가의 사진. 머리에 고깔모자를 쓰고 뒤돌아선 자신의 자화상 사진 앞에 서 있다.

전시장에는 3채널 비디오 영상 작품도 함께 상영 중이다. 영어, 독일어, 중국어 등으로 나오는 뉴스가 각국의 팬데믹 상황을 전하는 가운데, 고립된 방 안에서 홀로 일어섰다 앉기를 되풀이하며 창밖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작가의 모습이 나온다. 다른 검푸른 빛의 출품작처럼 지구촌 사람들이 함께 겪는 ‘코로나 블루’의 고통이 절실하게 와닿는다. 어윈 올라프는 서면 인터뷰 자료를 통해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과 마음이 마비된 느낌, 슈퍼에 가서 겪은 전례 없는 공포 등을 담아냈다”며 “광대 화장과 고깔모자는 나 자신의 감정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공근혜 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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