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3시부터 브이아이피 고객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한 한국화랑협회의 온라인 장터 키아프 아트 서울 누리집의 초기 화면. 출품한 국내 화랑들의 목록이 각 화랑 공간 내부를 찍은 이미지와 함께 실려 있다.
가벽을 친 부스마다 들쭉날쭉한 수준의 작품이 내걸리곤 했다. 부스 한쪽 밀실에선 화랑주들이 눈치를 보며 고객과 흥정했다. 일부 무명 작가들한테는 뒷돈을 받아 출품비를 대기도 했다.
국내 화랑업체들의 미술품 장터(아트페어)에서 20년 이상 되풀이됐던 이런 풍경이 올해엔 싹 사라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력 덕이다. 한국화랑협회는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해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품 장터 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의 올해 현장 전시를 취소하겠다고 이달 초 선언했다. 이에 따라 16일부터 새달 18일까지 키아프 누리집(
kiaf.org)에서 볼 수 있는 가상 장터인 ‘온라인 뷰잉룸’이 미술판의 새로운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온라인으로 전시 감상과 구매가 연결되는 키아프 장터 누리집이 한달 동안 국내 화랑 거래의 메카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뷰잉룸은 지난 1년간 협회 쪽이 기존 키아프 누리집을 개편해 만들었다. 올해 3월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홍콩 아트바젤이 내놓은 온라인 플랫폼과 국외 작품 플랫폼 ‘아트시’ 등을 참고했다. 16~23일에는 브이아이피 고객에게, 23일부터는 일반 관객에게 공개한다. 화랑마다 최대 30점의 출품작을 올리고 세부 정보를 담은 각 화랑 누리집으로 바로 연결할 수 있게 돼 있다.
키아프 온라인 장터 누리집의 한 화랑 항목에서 검색한 이배 작가의 작품. 단순한 작품 이미지 목록이 아니라 특정 작품을 짚으면 확대해서 감상할 수 있는 게 올해 키아프 온라인 장터 누리집의 특징이다.
오른쪽 상단의 뷰잉룸으로 들어가면 갤러리 현대, 조현 화랑, 리만 머핀, 페이스 등 140여개 국내외 화랑 목록이 각 전시장 내부 이미지와 함께 쭉 뜬다. 화랑을 골라 마음에 드는 작품을 선택해 볼 수 있다. 온라인 검색은 지난해 키아프 때도 네이버 아트윈도 사이트에 개설했지만, 작품 이미지 나열에 불과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작품별로 확대해 볼 수 있고, 화랑이 새 작품을 교체해 올릴 수도 있다. 텁텁한 선이 물결치는 이우환 작가의 30여년 전 역작 <바람과 함께>나 이 땅의 진경을 담은 박대성 작가의 한국화, 이배 작가의 숯 추상 그림 등을 세부 화면 확대 기능을 이용해 자세히 훑어볼 수 있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딸림 항목인 ‘프로그램’의 ‘이벤트’와 ‘특별전’이다. 23일 이후 운영될 ‘이벤트’는 전시장 소개 섹션인 ‘온사이트’와 토크·퍼포먼스 등 장터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새달 18일까지 업데이트하며 소개한다. ‘온사이트’에선 출품작을 선보인 화랑 내부 전시장, 설치 영상 등을 보여주고 작가의 설명과 대담도 곁들여 현장성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이와 연결해 북촌 국제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학고재, 공근혜갤러리 등이 ‘온사이트’와 연관된 실제 현장 관람 서비스를 병행할 예정이다.
특별전 항목에서는 ‘깊은 울림을 보다―한국 근현대 추상전’이란 제목 아래 김환기·정상화 등 한국 근대 추상작가 30명의 작품 40여점을 23일부터 해설 영상과 함께 올린다. 도록도 모바일용 앱북으로 내려받을 수 있다. 김동현 협회 팀장은 “대부분의 화상이나 고객이 온라인 전용 페어에 친숙하지 않기에 접근 틀을 단순화해 쾌적한 감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의 미술품 장터인 아트바젤(
artbasel.com)이 23~26일 선보이는 온라인 장터 ‘오브이아르(OVR·온라인 뷰잉룸) 2020’도 관심거리다. 올해 세계 주요 화랑 100곳에 나온 최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아트바젤은 10월28~31일 20세기 주요 작품을 위주로 한 별도의 온라인 장터 ‘오브이아르 20세기’도 내놓는다. 안방에서 국내외 시장의 주요 작품과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부산 영도 조선소에서 2020부산비엔날레 야외 출품작을 설명하고 있는 전시감독 야코브 파브리시우스. 비엔날레 총괄 기획자가 직접 전시투어를 이끌며 온라인 동영상을 찍은 파격적 시도가 눈길을 끌었다.
이달 초부터 일제히 현장 전시를 시작할 예정이던 부산비엔날레, 창원조각비엔날레, 대전비엔날레등 중소규모 국제미술제들도 코로나19 사태로 유례 없는 온라인 개막을 선언한 뒤 비대면 콘텐츠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특히 부산비엔날레는 덴마크 출신 전시감독
야코브 파브리시우스가 2주 격리를 감수하고 내한해 부산 원도심과 영도 조선소 등의 야외 전시장을 돌며 일일이 출품작을 설명하는 전시 투어 동영상을 유튜브 등 온라인 콘텐츠에 포함해 주목을 받았다. 비엔날레 쪽은 “전시감독과 모든 전시장 투어를 경험하는 온라인 콘텐츠를 만든 건 부산 비엔날레 20년 역사상 최초의 시도”라며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한국화랑협회·부산비엔날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