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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제주4·3 ‘큰 아픔’과 ‘평화의 가치’ 오페라로 꾸몄죠”

등록 2020-11-04 18:27수정 2020-11-05 02:35

[짬] 소프라노 강혜명씨
소프라노 강혜명씨. 허호준 기자
소프라노 강혜명씨. 허호준 기자

“제주4·3은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모두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평화의 가치를 담고 있어요. 제주도가 평화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모든 사람에게 각인시켜주는 곳이었으면 해요. 우리 스스로 얼마나 큰 아픔을 보듬으며 이겨내 살아왔는지를 이번 오페라에 담으려고 했어요.”

오페라 <순이삼촌 포스터>
오페라 <순이삼촌 포스터>

지난 3일 제주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오페라 <순이삼촌>의 막바지 연습에 열중하던 소프라노 강혜명(43)씨의 말이다. 오는 7, 8일 제주아트센터에서 처음 무대에 올리는 오페라 <순이삼촌>은 제주4·3의 비극을 그린 소설가 현기영의 작품이 원작이다.

제주시와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기획한 이 오페라는 국내 정상의 성악가와 무용단 등 모두 200여명이 출연하는 대형 창작 오페라이다. 2년 전부터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준비해온 강씨는 연출과 예술감독, 각본과 주역으로 출연해 1인 4역을 소화하고 있다.

“소설 <순이삼촌>이 제주4·3의 비극을 처음으로 전국화시켰다면, 오페라로 재해석되고 재탄생하는 <순이삼촌>은 세계화에 기여할 것입니다. 음악이라는 공통의 분모로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콘텐츠이지요.”

제주 출신인 강씨는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4·3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고 했다. 강씨는 “4·3 국가추념일이 지정된 2014년 4·3 전야제 행사에 참석하면서 4·3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며 “이듬해인 2015년 행사에 초청받았을 때는 4·3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증조부가 4·3 때 돌아가신 것도 그때야 알게 됐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아픔이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제주 출신으로서 제주도 대표 콘텐츠의 하나로 오페라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자연만 보지 않고, 섬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문화예술 콘텐츠에 중요한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강씨가 이 오페라를 만든 이유다.

하지만 오페라를 준비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강씨는 “모든 창작물은 다 힘들다”면서 “4·3처럼 우리가 가까이에서 알고 있는 이야기를 보통사람들이 멀게 느끼는 장르인 오페라로 무대에 올렸을 때 이 작품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라며 웃었다.

4·3비극 그린 현기영 단편 원작
‘순이삼촌’ 오페라 7~8일 제주서
연출·예술감독·각본·주역 1인 4역
제주 문화예술인들 대거 참여

제주 출신으로 증조부 4·3 희생자
2년 전 ‘여순사건’ 오페라 각색·주역

시대극을 다룬 오페라에 주역으로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강씨는 2018년 여순사건을 다룬 오페라 <1948년 침묵>을 무대에 올리면서 각색과 주역을 맡은 경험이 있다. 강씨는 그때의 경험이 이번 4·3 오페라를 제작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강씨는 “문화예술로서 사건을 조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 예술적 우수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대중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페라를 제작한다면 다른 어떤 장르보다 사람들을 더 감동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 오페라는 연극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연극적인 요소가 오페라의 한 부분이 아니라 중요 구성 요소가 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음악이 전달할 수 있는 힘을 배합해 작품에 녹여냈기 때문에 유족이나 일반인들에게 충분히 전달될 것이라고 강씨는 말했다.

강씨는 오페라를 준비하면서 힘들 때는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의 너븐숭이 순이삼촌 문학비 공원을 자주 찾았다. “너분숭이 순이삼촌 문학비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 이름도 없이 ‘어진아’라는 이름으로 죽어간 갓난아기들, 그 아픔을 지금까지 갖고 살고 계신 분들을 보면 저 스스로 ‘힘든 게 뭐냐’는 질문을 던지게 되지요.”

애초 이 오페라는 지난달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공연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코로나19가 심각해지자 취소됐다. 내년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강혜명씨. 허호준 기자
강혜명씨. 허호준 기자

제주4·3을 소재로 한 이번 오페라는 원작자에서 배우, 연출가 등 제주의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참여해 제주인들의 시각과 언어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이 작품인 만큼 제주인들의 눈과 언어로 무대에 올리는 이 오페라는 제주어가 나오기도 한다. 4막에서는 동요에서 선소리까지, 살풀이에서 현대무용까지 다양한 공연예술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강씨는 개인적으로 오페라의 모든 부분이 명장면이지만, 프롤로그의 현기영 작가에 대한 헌정 아리아가 가장 애착이 가는 곡 가운데 하나라고 덧붙였다. 강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올해 해외 스케줄이 취소된 것이 오히려 <순이삼촌> 오페라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웃었다.

성악가 강혜명의 계획을 물어봤다. “2022년이면 해외무대 데뷔 20주년이 돼요. 성악가로서 더 높은 곳을 가기보다는 예술가로서 더 깊어져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이 여정에 모든 일이 도움될 거라고 생각해요.”

소설가 현기영씨는 “오페라가 4·3 영령들을 위한 진혼곡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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