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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임충섭씨, 일상 사물과 세상 단면에 ‘사색의 옷’ 입히다

등록 2006-01-25 17:32수정 2006-01-25 18:23

2003년작 <강> 앞에 선 작가 임충섭씨. 옛 시골 고향(충북 진천)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은 지금도 자신을 자연과 도시 문화 사이에 끊임없이 맴돌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국제갤러리 제공
2003년작 <강> 앞에 선 작가 임충섭씨. 옛 시골 고향(충북 진천)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은 지금도 자신을 자연과 도시 문화 사이에 끊임없이 맴돌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국제갤러리 제공
재미작가 임충섭씨 근작전

30년 이상 미국 뉴욕에서 작업해온 작가 임충섭(65)씨는 오로지 생각하는 마법으로 기기묘묘한 이미지 덩어리들을 만든다. 투명 재질의 합성물질로 축 늘어진 부처님 귀를 만들고 결가부좌한 부처의 발목 위에 수인한 손을 턱 붙였다. 나무 막대들을 휘고 접붙이니 말 뒷다리와 지붕의 처마선 이미지가 합성된 조형물 <말-지붕>이 되었다. 투명 물질로 떠서 걸어놓은 아기 보행기 모양의 덩어리는 세상을 떠다니는 노아의 방주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저 낯선 덩어리 같지만, 자세히 보면 형상의 맥락이 있고, 세상에 대해 뱉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작가는 냉혹한 뉴욕 화단의 밑바닥에서 생각을 단단한 덩어리로 빚어내는 절제와 사색의 힘을 배웠다.

내달 19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근작전은 비상한 작가의 머릿속 상상력을 물컹하게 만질 수 있는 전시다. 투명한 합성 물질이나 종이, 폐기물 따위의 재료에 진회색, 흑색조의 야릇한 색조로 덮힌 작가의 설치, 평면, 매체 작품들은 오직 자신만이 전지전능할 수 있는 생각의 소우주를 이룬다.

현대 문명의 산품들과 자연 현상, 생물의 이미지들이 그의 눈을 타고 머리 속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낯선 세계의 존재로 변한다. 그리고 다시 손을 타고 ‘물건’으로 나타난다. 그의 눈에 걸려들면 상식의 시야에 머물던 사물들은 전혀 다른 카오스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말-지붕>에서 작가는 말처럼 휘달려가는 세월의 속력을 떠올렸다고 했다. 타자기 모양 조형물에 시골의 숲과 곤충 등의 이미지를 붙이고 금속 폐기물로 보행자의 발을 늘어뜨린 뒤 다시 발목 덩어리를 놓은 <화석풍경> 연작은 자연과 도시를 오가는 그의 정신이다. 퍼뜩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카드회사의 광고글귀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 작업은 머리 속 생각들을 다분히 썰렁하게 풀어놓는 개념미술의 범주다. 하지만 딱딱한 응시 대신 부드러운 시선으로 일상사물과 세상의 단면들을 응시하고 예측불허의 상상력으로 싸안는 묘미를 보여준다.

서양 그림에서의 소실점, 수평과 수직의 구성 관계를 우리네 전통 여인들의 베짜기, 가야금 연주 이미지 등과 결합시킨 2층의 대형 실 설치작업, 제사에 흔히 제물로 쓰이는 돼지 이미지를 무당의 원색 도포자락과 돼지 발자국 등으로 은유한 <도야지> 등은 전시의 고갱이에 해당한다. 이 시대 시각 문화에 대한 냉소에 유행처럼 집착하고 공허감만 주로 남기기를 선호하는 요사이 한국 개념미술가들은 모름지기 그에게서 한수 높은 감성의 공력을 배워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의 힘으로 충만한 작품과 달리 작가는 어눌하기만 하다. “어릴적 촌구석에서 자란 정서적 경험이 뉴욕의 콘크리트 숲 속에서도 끊임없이 꿈틀거립니다. 제 작업은 그런 내 마음 한부분을 한움큼 후벼파낸 것들이지요.”(02)735-8449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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