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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필진] 나와 모차르트와의 인연, 그리고 추억

등록 2006-01-27 16:52

1월27일은 모차르트의 탄생일이다.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250년이 되는 해이어서 다른 때보다도 유난히 그에게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각종 문화 이벤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모차르트 기념 이벤트들이 줄을 잇고 있다. 35년이라는 짧은 세월을 살면서 600여 편의 많은 음악 작품들을 세상에 남기고 간 모차르트! 세계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음악적 천재성을 통해 발현된 위대한 업적 때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객관적인 의미만으로 사람들이 그를 이처럼 열광적으로 주목할 수 있을까? 그가 아무리 위대한 음악가였고, 그의 음악이 아무리 불멸의 작품들로 소개된다 할지라도 그의 음악의 세계에 깊은 정서적 공감을 갖지 않고는 그를 기억하거나 주목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가 오늘 모차르트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를 주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통해 감동을 받은 개인적인 인연 때문은 아닐까?

돌이켜보면, 내 삶에 있어서도 모차르트와의 인연은 참으로 깊다. 나는 음악가도 아니고, 또 음악을 아주 사랑하는 음악 애호가도 아니고 음악에 관한 한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모차르트에 대해서 남다른 정보나 지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평범한 나와 모차르트와의 인연은 꽤나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FM을 즐겨 들으면서 클래식 음악의 깊은 감동에 빠져 있을 때만해도 나는 그저 누구의 무슨 작품 식으로만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엔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들을 들으면서 밝고 명랑하다는 느낌만을 가졌지 그게 모차르트의 말년의 음악 스타일을 대변하고 있었다는 사실 같은 것은 알지 못했다. 음악을 음악으로만 들으면서 그 음악의 선율과 감동에 빠졌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 때의 음악 감상이 훨씬 더 본질적인 감상이었던 것 같다. 마음과 느낌으로만 음악을 들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모차르트와의 인연이 나의 삶에 특별한 역사가 되었던 것은 대학 시절이 되어서였다. 대학 2학년 때 모차르트를 좋아하던 친구를 만나고서부터였다. 음악을 전공했던 그 친구는 유난히도 모차르트를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에서부터 모차르트에 대한 각종 정보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그 친구만의 삶은 내게는 무척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모차르트는 은연중에 나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난 그 친구를 통해서 내가 자주 들었던 선율들이 모차르트의 음악들이었다는 사실을 문득 문득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아스라이 남아 있는 기억 가운데 하나는 수업이 다 마쳐지는 저녁 시간에 교내 방송을 통해 모차르트의 음악이 흘러나올 때마다 마치 딴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그 음악에 심취할 때 짓던 그 친구의 낯선 모습이다. 아, 모차르트! 시대를 뛰어넘는 만남(encounter)을 가능케 하는 마력이 그의 음악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난 그 친구를 내 기억 속에서 점점 잊어 갔다. 하지만 그 친구의 덕분으로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관심은 조금씩 늘어 갔다. 그의 현악에 대한 음악 청취의 범위는 교향곡으로, 오페라로, 미사곡으로 점점 넓혀졌다. 그러나 내 삶 속에서 어쩌다 가끔씩 모차르트를 만날 때면 난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는 나의 모차르트였던 것 같다.

몇 년 전, 영국 유학시절 2주간의 브레이크 텀(break term)을 이용해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유럽 여행 시에는 기간이 너무 짧아 가보지 못했던 오스트리아를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베네치아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빈으로 갔다. 그곳에서 난 쇤브룬 궁전 정원, 오페라하우스 등과의 만남보다는 빈의 거리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들의 모차르트 연주와의 만남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차도가 없는 빈의 중심 거리 곳곳에서 펼쳐지는 연주들은 거의 모두가 다 모차르트였다. 그 음악을 들으며 한 동안 잊혀졌던 친구의 기억을 떠올린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대학 졸업 후 한 번인가 만난 이후로는 다시는 만나지 못했던 그 친구는 내 유학 시절에 빈에서도 모차르트와 함께 여전히 내 곁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차르트와 그 친구는 하나가 되어 나의 기억 속에 언제나 자리하고 있다. 이 얼마나 끈질긴 인연인가?

한 신문 기사를 보니 모차르트 때문에 오스트리아를 찾는 관광객이 1년에 1,5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이 정도 되고 보면 250년 전에 태어난 모차르트가 지금의 오스트리아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아닌가 싶다. 하긴 영국에서 세익스피어의 생가인 스트랫퍼드 어펀 에이번에 갔을 때도 똑같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영국 경제의 절반은 런던과 세익스피어가 담당하고 있다고....

오스트리아를 먹여살리는 문화 컨텐츠의 주인공으로서, 600여 곡의 작품을 통해 전 세계 인류에게 음악적 감동을 주는 음악의 신동으로서,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시대를 앞서간 진보주의자로서, 그렇게 인류에게 또 다른 진리의 의미를 선사한 자로서 모차르트는 분명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런 객관적 가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차르트를 기억하고 그를 사랑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 있어서 모차르트는 그런 거창한 인물이 아니다. 물론 내 머리에서는 언제나 그런 거창한 이미지의 모차르트를 묘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가슴 속에 있는 모차르트는 나의 친구의 그 소박한 정서와 다르지 않다. 모차르트를 통해 친구를 떠올리고, 친구를 통해 모차르트를 떠올릴 뿐이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내게 더욱 더 소중하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이 마치 그 친구의 생일처럼 생각된다. 아쉽다. 그 친구가 지금도 내 곁에 가까이 있었다면 작은 생크림 케익이라도 하나 사들고 가서 옛날의 추억과 모차르트와의 인연을 되새겨 볼 것을...그래도 다행이다. 오늘이 모차르트의 생일이라고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언론들이 있어서... 덕분에 난 오늘 그 친구에 대한 추억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었다. 정말 그리운 추억들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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