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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지금 봐도 충격적인 ‘페미니즘 전사’, 이게 30년 전이라구요?

등록 2021-03-05 04:59수정 2021-03-05 11:02

서울시립미술관 회고전 ‘이불-시작’
‘이불-시작’전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2전시실의 영상 공간. 이불이 1988년 <갈망>으로 시작해 1996년 풍선 모뉴먼트 작업까지 실행한 12건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기록영상들이 전시실 양쪽 벽에 나뉘어 장대하게 펼쳐지고 있다. 전시실 처음과 끝엔 각각 54대의 선풍기가 맹렬한 소리를 내면서 바람을 공간 속으로 불어넣는다. 기획진은 이런 색다른 얼개를 통해 이불 퍼포먼스의 변모 과정과 그의 행위예술이 지금과 어떻게 맞닿는지를 감각적으로 일깨우려 했다.
‘이불-시작’전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2전시실의 영상 공간. 이불이 1988년 <갈망>으로 시작해 1996년 풍선 모뉴먼트 작업까지 실행한 12건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기록영상들이 전시실 양쪽 벽에 나뉘어 장대하게 펼쳐지고 있다. 전시실 처음과 끝엔 각각 54대의 선풍기가 맹렬한 소리를 내면서 바람을 공간 속으로 불어넣는다. 기획진은 이런 색다른 얼개를 통해 이불 퍼포먼스의 변모 과정과 그의 행위예술이 지금과 어떻게 맞닿는지를 감각적으로 일깨우려 했다.
이불. 199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로 첫손 꼽히는 이 작가는 30년 전 얼마나 급진적이고 날카로웠던가.

어둡고 드넓은 수십여평의 대형 전시장에서 20대 작가 시절 이불의 광기 어린 몸짓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보았다. 홍대 앞, 신촌 카페와 거리 등에서 최정화, 고낙범 등 괴짜 동료들과 어울려 ‘뮤지엄’이란 전위 그룹 활동을 하며 놀았던 그는 첫 개인전을 치른 뒤인 1989년 몸을 내던져 일을 낸다. 서울 대학로 소극장 천장에 등산용 로프로 자신의 알몸을 묶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급기야 보다 못한 관객이 끌어내리면서 퍼포먼스는 전설이 된다. 바로 그 유명한 행위예술 기록 영상이 어제처럼 생생한 대형 화면으로 눈앞에서 흘러간다. 그 옆과 맞은편 벽에선 같은 시절의 또 다른 명작 영상들이 돌아가고 있다. 작가와 동료들이 솜으로 누빈 괴물 형상의 조각물을 옷처럼 뒤집어쓰고 기괴한 움직임과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1988년의 유랑 퍼포먼스 <갈망>, 그리고 <갈망>의 행위를 1990년 일본 도쿄 도심 거리와 공공시설물, 극장에서 무려 열이틀 동안 작심하고 확대해 펼친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의 장면들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또 다른 영상들에서는 뭔가 후끈하고 흥분된 분위기 속에 색동 한복 차림에 방독면을 쓰고 부채춤을 추거나 다른 아시아 작가들과 속옷만 빼고 모든 옷을 바꿔 입는 기행이 펼쳐지고 관객들이 발판을 밟아 인형과 여왕, 여신, 레슬러, 무당 등으로 분한 12m 높이의 작가 초상 풍선을 부풀리는 90년대 중후반의 모뉴먼트 작업도 잇따라 영상 속에 등장한다. 자세히 보니 전시실 양 벽엔 12개나 되는 대형 퍼포먼스 영상이 도열하듯 줄줄이 나뉘어 장대하게 20~30년 전 작가의 다종다양한 몸짓을 틀어주는 중이었다. 1980~90년대 한국 미술판을 풍미했던 이불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기록물들이다. 들머리 처음과 출구 끝 쪽엔 각각 54대의 선풍기가 맹렬하게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바람을 공간 속으로 불어넣는다. 암전된 공간에서 흐릿하지만 충격적인 20~30년 전의 몸짓 영상을 통과하면 눈의 감각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불 퍼포먼스의 90년대 변모 과정과 그의 행위예술이 지금과 어떻게 맞닿는지를 일깨워주는 공간인 것이다.

전시장 들머리 로비에 설치된 작가의 1996년 작 설치작품 <히드라>(2021년 재제작). 이불의 대표적 작업 가운데 하나인 풍선 모뉴먼트 연작의 하나다. 관객들이 풍선 구조물 사방에 연결된 펌프의 발판을 밟아 여신, 왕비, 무속인, 레슬러 등 작가의 다양한 여성적 이미지가 인쇄된 풍선을 일으켜 세우는 참여적 성격의 작업이다.
전시장 들머리 로비에 설치된 작가의 1996년 작 설치작품 <히드라>(2021년 재제작). 이불의 대표적 작업 가운데 하나인 풍선 모뉴먼트 연작의 하나다. 관객들이 풍선 구조물 사방에 연결된 펌프의 발판을 밟아 여신, 왕비, 무속인, 레슬러 등 작가의 다양한 여성적 이미지가 인쇄된 풍선을 일으켜 세우는 참여적 성격의 작업이다.
지난 2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시작된 한국 현대미술 대표작가 이불의 회고전 ‘이불―시작’의 하이라이트는 2전시실 영상 공간이다. 그의 초창기 조형물과 퍼포먼스의 주요 작품과 관련 자료 기록들을 집중 조명하는 이 전시에서 1988년 <갈망>으로 시작해 1996년 풍선 모뉴먼트 작업까지 봇물 터지듯 벌였던 33건의 퍼포먼스를 간추린 12개 기록 영상은 단연 고갱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페미니즘 미술의 전사, 한국 현대미술의 90년대적 전형성을 구축한 대가로 꼽히는 이불 작품세계의 등뼈를 만든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당대 역사적 이성과 리얼리즘의 시각적 방법론으로 평등의 페미니즘 미술을 추구하던 여성화단에서 그는 자신의 몸 자체를 통째로 던지고 연약한 몸과 그 껍질인 옷이 여기저기 유랑하거나 부패하거나 부서지는 광경을 연출했다. 이런 직관적이고 과격한 몸짓의 언어들은 여성미술을 넘어,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바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대표 작가로 그를 자리매김하게 했다.

전시는 크게 세 영역인데, 1부와 3부는 2부의 배경과 맥락들을 보충하는 성격이다. 앞선 1부에서 홍대 재학 시절의 드로잉과 실험작업들을 담은 사진들, 1988년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였던, 옷처럼 입고 다니는 연약하고 부드러운 소프트 조각 <갈망>과 90년대 작 <몬스터>의 재현품과 이 작품들에 대한 드로잉을 선보인다.

1전시실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이불의 초기 조각 작품인 <무제(갈망)>(1988년 작, 2011년 재제작)과 1990년대 작품인 <몬스터: 핑크>(1998년 작, 2011년 재제작). 딱딱한 기존 조각 재료와는 전혀 다른 부드럽고 가벼운 천과 솜 등으로 사지와 몸 등이 뒤틀리거나 따로 붙어 생성된 듯한 유기적인 괴물의 형상을 빚어냈다. 이 괴물은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타자화된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1전시실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이불의 초기 조각 작품인 <무제(갈망)>(1988년 작, 2011년 재제작)과 1990년대 작품인 <몬스터: 핑크>(1998년 작, 2011년 재제작). 딱딱한 기존 조각 재료와는 전혀 다른 부드럽고 가벼운 천과 솜 등으로 사지와 몸 등이 뒤틀리거나 따로 붙어 생성된 듯한 유기적인 괴물의 형상을 빚어냈다. 이 괴물은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타자화된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3부는 기록 아카이브 중심이다. 1997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생선에 플라스틱 장식을 달고 전시했다가 썩으면서 악취가 나자 철거된 사건으로 유명해진 작품 <장엄한 광채>의 구상에 얽힌 드로잉과 사진, 장식 소품 등을 비롯해 사진 기록 60여점과 미공개 드로잉 50여점, 오브제 조각 10여점이 나왔다. 80~90년대 주요 퍼포먼스에 얽힌 세부적인 내력과 작가의 의도, 감성 등을 엿볼 수 있는 영역이다.

1994년 여성주의 미술전인 ‘여성, 그 다름과 힘’에서 이불이 알몸 퍼포먼스를 벌였을 당시의 사진. 곡괭이 등으로 자신의 목에 채운 쇠사슬을 끊는 강렬한 행위를 통해 작가는 여성의 몸이 지닌 정치성과 현장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1994년 여성주의 미술전인 ‘여성, 그 다름과 힘’에서 이불이 알몸 퍼포먼스를 벌였을 당시의 사진. 곡괭이 등으로 자신의 목에 채운 쇠사슬을 끊는 강렬한 행위를 통해 작가는 여성의 몸이 지닌 정치성과 현장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번 회고전은 대중에 잘 소개되지 않았던 80~90년대 이불 작가의 초창기 퍼포먼스 등을 세부적인 기록 자료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대학 재학 시절 무수히 작업했을 초기 습작의 실물 자료들이나 이후 전위 작가 그룹 ‘뮤지엄’에서 작업하며 활동했던 내력들이 전시에서 빠진 건 허점으로 비친다. 작가 자신의 몸과 몸짓을 저항과 발언의 장으로 타자화시켰던 이불 특유의 여성주의 작업에 대해 기획자가 태동 과정과 맥락을 구체적으로 짚지 못하고 작품 콘텐츠에 대한 재해석 또한 모호하다는 인상을 주는 건 이런 공백 때문일 터다. 5월 16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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