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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철거된 기차역의 흔적에, 폐허 된 폼페이의 유적이…

등록 2021-03-22 17:39수정 2021-03-23 02:54

옛 광양 역사 터에 22일 문을 연
전남도립미술관 개관 특별 전시
로랑 그라소 광양-폼페이 연결
상상력 바탕 역사·자연 고찰
프랑스의 현대미술 대가 로랑 그라소가 전남도립미술관 개관을 맞아 펼치는 신작전 ‘미래가 된 역사’의 마지막 섹션 ‘태양풍’의 전시장. 태양에서 지구를 향해 불어오는 태양풍의 실시간 활동 양상을 특유의 색채 기법으로 중계해 보여주는 안쪽 소프트웨어 그래픽 작업이 배경이 된다. 이 화면 앞으로는 생태 재앙으로 꽃잎이 많아지고 꽃술이 두개가 된 돌연변이 꽃들의 조형물과 돌연변이 꽃을 든 아이의 상이 놓이고 벽면에 돌연변이 꽃의 미래 정물화들이 내걸렸다.
프랑스의 현대미술 대가 로랑 그라소가 전남도립미술관 개관을 맞아 펼치는 신작전 ‘미래가 된 역사’의 마지막 섹션 ‘태양풍’의 전시장. 태양에서 지구를 향해 불어오는 태양풍의 실시간 활동 양상을 특유의 색채 기법으로 중계해 보여주는 안쪽 소프트웨어 그래픽 작업이 배경이 된다. 이 화면 앞으로는 생태 재앙으로 꽃잎이 많아지고 꽃술이 두개가 된 돌연변이 꽃들의 조형물과 돌연변이 꽃을 든 아이의 상이 놓이고 벽면에 돌연변이 꽃의 미래 정물화들이 내걸렸다.
‘이탈리아 고대 도시 폼페이와 전남 소도시 광양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2008년 마르셀 뒤샹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로랑 그라소(47)는 무관해 보이는 두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접맥시키는 작업을 최근 벌였다. 광양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남 하동과 마주 보는 영호남 경계 지대다. 폼페이는 기원 전후 로마제국 휴양도시로 번영했으나 화산 분화로 파묻혀 버린 곳이다. 작가는 두 지역을 역사와 자연에 얽힌 독특한 상상력으로 접붙인다. 흰 개가 폐허가 된 폼페이 유적의 옛 도로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영상물이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이 영상은 조금 뒤 연기와 화산재가 흩날리는 시칠리아 섬 화산의 영상으로 바뀌며 문명의 덧없음과 자연의 유장함을 일러준다.

로랑 그라소가 개관전시에 내놓은 대형 영상작품 <검은 태양>의 한 장면. 작가의 시선은 고대도시 폼페이의 폐허를 거닐고 있는 흰 개의 움직임을 계속 따라간다. 인간 역사의 무상함과 변화하는 자연의 속성을 내포한 수작이다. 작품이 상영되는 전시공간 또한 과거 역사와 철로가 존재했다가 사라진 터의 지하에 자리한다는 점에서 맥락이 흥미롭게 연결된다.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로랑 그라소가 개관전시에 내놓은 대형 영상작품 <검은 태양>의 한 장면. 작가의 시선은 고대도시 폼페이의 폐허를 거닐고 있는 흰 개의 움직임을 계속 따라간다. 인간 역사의 무상함과 변화하는 자연의 속성을 내포한 수작이다. 작품이 상영되는 전시공간 또한 과거 역사와 철로가 존재했다가 사라진 터의 지하에 자리한다는 점에서 맥락이 흥미롭게 연결된다.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22일 개관식을 연 전남 광양의 전남도립미술관. 옛 광양역사와 철로 터 위에 독특한 사다리 입면체 모양으로 지어졌다.
22일 개관식을 연 전남 광양의 전남도립미술관. 옛 광양역사와 철로 터 위에 독특한 사다리 입면체 모양으로 지어졌다.
로랑의 이 작품이 광양에 왔다. 22일 전남 광양시 광양읍 옛 광양역사 터에 문을 연 전남도립미술관 개관 특별전 지하 공간에서 관객과 만나는 설치 영상 <검은 태양>이다. 이지호 관장의 부탁으로 들여온 <검은 태양>은 40여 년간 남도의 사람과 물산을 싣고 내렸던 경전선 옛 철도역사의 자취에 지은 미술관에서 상영된다는 ‘장소성’의 맥락이 흥미롭다. 화산재에 묻힌 고대 도시의 흔적이 도시개발과 리모델링 바람에 철거된 한국 근현대 철도 공간의 흔적을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틀거지가 역사와 자연의 섭리에 대한 몽상을 자아낸다.

‘미래가 된 역사’란 제목이 붙은 로랑의 전시(8월8일까지)는 폼페이 연작을 포함해 모두 4개의 영역으로 구성된다. 전체적으론 자연과 기상이변, 재해가 역사적 상황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가상의 그림과 영상으로 보여준다. 들머리에서는 유명한 연작 ‘과거에 대한 고찰’의 새 작품을 주목해 봐야 한다. 18세기 공재 윤두서의 명작 <말 탄 사람>과 겸재 정선의 <내금강> 화법을 연구해 유화로 본떠 그려놓고 작가 특유의 도상인 일식 현상이 일어나는 하늘 그림을 맞붙인 구성이다. 조선시대 명화의 주인공이나 산수풍경이 낯선 천체 현상 아래 놓이는 가상의 풍경을 로랑만의 역사적 감각으로 빚어낸 것이다. 마지막 섹션 ‘태양풍’ 전시장은 태양에서 지구를 향해 불어오는 태양풍의 실시간 활동 양상을 알록달록한 색채 스펙트럼으로 중계하는 소프트웨어 화면이 배경이다. 생태 재앙으로 꽃잎이 많아지고 꽃술이 두개가 된 돌연변이 꽃과 이 꽃을 든 아이의 상이 놓이고, 벽면에 돌연변이 꽃의 정물화가 내걸린다. 천체와 자연의 재앙이 미칠 두려움을 상징적인 조형과 이미지로 표현했다.

로랑 그라소의 전시장 첫머리에 내걸린 연작 <과거에 대한 고찰> 중 일부분. 18세기 조선 화가 공재 윤두서의 명작 <말 탄 사람>을 유화로 본떠 그린 뒤 로랑 그라소 특유의 도상인 일식이 일어나는 하늘 그림을 맞붙여 공재 명화의 주인공이 낯선 천체 현상을 주시하는 가상의 역사적 풍경을 빚어냈다.
로랑 그라소의 전시장 첫머리에 내걸린 연작 <과거에 대한 고찰> 중 일부분. 18세기 조선 화가 공재 윤두서의 명작 <말 탄 사람>을 유화로 본떠 그린 뒤 로랑 그라소 특유의 도상인 일식이 일어나는 하늘 그림을 맞붙여 공재 명화의 주인공이 낯선 천체 현상을 주시하는 가상의 역사적 풍경을 빚어냈다.
전남도립미술관은 1967년 문을 열었다가 44년간의 영업을 끝내고 10년 전 문을 닫은 남도 시골 역에 들어선 면적 5300여평의 초현대식 미술관이다. 1000평에 육박하는 지하 9개 전시장과 전시장 면적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수장고 시설, 첨단 운영 시스템 등을 갖춰 기존 지방 미술관과 차별화한 글로벌 아트센터 콘셉트를 보여준다.

로랑 그라소 전과 나란히 차린 기획전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다’(7월18일까지)는 남도 작가들의 현대미술이 남도에 뿌리내린 전통 회화와 어떻게 상호 관계를 갖고 해석되는지 탐구한다. 20세기 남도 화단의 양대 거장인 의재 허백련의 남종산수화와 남농 허건의 실경 풍경화를 모았다. 그들의 영향을 받은 허달재, 이이남, 허진, 김선두, 장창익 등 남도 출신 작가들의 오마주 작품도 따로 선보인다.

광양/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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