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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외길 46년, 어느 예술가의 퇴임기념공연

등록 2006-02-03 15:20

정년퇴임 기념공연 을 무대에 올린 연출가 오태석(65)씨를 30일 서울 남산의 아랫자락에 자리한 퍼시픽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세상이 모두 디지털로 가도, 디지털로 안 되는 게 연극”이라며 “복제된 기성품에 질린 사람들은 결국 라이브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정년퇴임 기념공연 을 무대에 올린 연출가 오태석(65)씨를 30일 서울 남산의 아랫자락에 자리한 퍼시픽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세상이 모두 디지털로 가도, 디지털로 안 되는 게 연극”이라며 “복제된 기성품에 질린 사람들은 결국 라이브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동아연극상’ 시상식에 다녀왔다.

오늘 동아연극상 대상과 연출상을 거머쥔 ‘극단 목화’의 대표 오태석 선생님은, 그동안 연극인의 길을 걸어오며 수많은 상을 받았지만,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며 퇴임기념공연으로 올린 <용호상박>의 수상은 본인에게나 제자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서울예대 수학시절, 오태석 선생님은 학생들과 삼각 김밥에 라면을 먹으며 밤새워 기말작품 발표회를 준비했고, ‘작가는 우리말의 숨쉬기를 알아야한다’며 <춘향전>의 필사를 과제로 내주셨다. 또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작가는 '움직임이 멈추면 굳어버리는 콘크리트 트럭’과 같다며,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할 것을 당부하며, 껄껄껄 웃으셨다.

언젠가 선생님이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공연을 마치고 술 한 잔 걸친 후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던 길에 졸다가 역무원이 호통 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내린 적이 있었노라고.

까까머리에 허름한 옷차림의 선생님을 역무원이 노숙자로 오해해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연극계의 대부를 알아보지 못한 역무원을 욕할 수는 없으나 그런 얘기를 듣는 제자의 입장에선 솔직히 씁쓸한 마음이 컸다. 오직 한 길을 쉼 없이 달려왔지만, 그를 아는 소수만이 기억하고 인정하는 예술가의 고독한 길....그 중에서도 배고프다는 연극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선생님이 마냥 존경스러울 뿐이다.


선생님의 제자로(선생님께 잠시 배웠다는 이유로 제자를 자칭함) 글 쓰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늘 다른 길을 기웃거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때려 칠까?’라는 무의식과 싸워야하는 나로서는 선생님의 무던한 발걸음이 내심 위안이 되고, 채찍이 된다.

올해로 연극인생 46년....한 길을 오랫동안 걸어온 사람에게 따라붙는 ‘大家’의 이미지보다 장난꾸러기 같은 면모가 더 강한 오태석 선생님은 퇴임 즈음에 받는 상이 왠지 서서히 물러날 때를 준비하라는 무언의 압력 같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연극 50년 했다는 사람이 쓴 작품이 겨우 이거야. 그런데 내려오라네. 나는 계속 무대 위에서 놀 거고, 계속 쓸 겁니다.” 선생님이 퇴임식 연단에서 하신 공약처럼 좋은 작품으로 오래오래 만나 뵐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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