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단장한 금산사 일주문
쌍춘년이라는 올해는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겹친다. 식목일을 맞이하여 조상묘도 돌아볼 겸,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딸아이를 데리고 금산사를 찾았다. 호남고속도로를 나와 동으로 들어가면 모악산 아래 금산사가 있다. 금산사라 한 것으로 보아 모악산의 옛 이름이 금산이거나 왕과 관련이 있을 법한데, 바로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기거하던 곳이다. 모악산은 북쪽을 향하는 산이어서 풍수상 배역지형(背逆地形)이다. 백두대간 줄기에서 마이산을 거쳐 서쪽으로 힘차게 내려오다 호남벌판에 우뚝 솟아오른 모악산은 마치 평지에 솟아오른 죽순들 같다. 그 모악산 줄기 남 서편 양지바른 곳에 금산사가 자리한다.

종교계에서 미륵에 대한 종교적 해석은 난무하지만, 미륵신앙은 민중의 한과 희망의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하기에 미륵신앙은 민중의 것이지, 결코 종교인들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금산사의 큰스님인 송월주 같은 이는 “나만이 성불하자고 산에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겠다.”라는 뜻을 내세우며 그간 사회의 원로로서 겨레와 나라를 위해 큰 역할을 해왔다. 금산사 입구 매표소에서 필자와 가족은 기대 밖의 호의에 큰 감동을 얻었다. 새벽부터의 강행군으로 지쳐있었기에 꽤 힘겹게 걸어서 매표소에 도착했는데, 마치 고향집 형님처럼 매표원이 나와서 간단한 인사와 친절로 반겨주었다. 묻는 말에도 성의 있게 답해주는 그이의 모습이 지금도 아삼삼하다. 게다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거저로 입장까지 시켜 주었다. 산주인을 닮은 것인지 아니면 절 주인을 닮은 것인지 참으로 흐뭇했다. 일주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 북쪽 방향으로 대웅전이 드러나는데, 실상 미륵전은 모악산 정상을 배경으로 서편 호남벌판을 향해 자리한다. 다시 말해 남쪽을 향해 대웅전이, 서편으로는 미륵전이 교차하는 이상한 구도의 사찰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백제의 전통사찰양식에서 크게 벗어나 버렸다. 이를 속리산 법주사에 가서도 볼 수가 있었는데, 굉장히 어색했다. 미륵전을 지나 예쁜 연못 위 계단을 오르면 스님들이 수계를 받는 한국전통양식의 방등계단과 부처의 진실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나온다. 나는 불교계에서 소중히 여기는 적멸보궁이야 말로 사람이 죽으면 영원히 사라지고, 다시 생전의 업에 따라 윤회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에 중대한 허점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불교의 가르침대로라면 석가모니는 영원히 적멸하거나 윤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그의 육신과 가르침은 당당하게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육신은 [사리]라는 형태로 존재하며, 나머지는 지구 공간에 미세하게 물질화(化)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불교의 [있고 없음이 같다.]는 이치와 같다. 다시 말해 사람의 육신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주 공간에 다른 형태로 변화하여 존재하며, 그의 사회정치적 생명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으로 활동하며 살 때, 세상에 보탬이 되도록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면 진정 부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를 되새기게 된다. 행여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많지나 않았는가? 우리 모두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사람 나고 종교가 생겨났으니 마땅히 종교가 사람에 봉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종교에 헌신하고 봉사하게 만드니, 뭔가 뒤바뀐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도 서편 뜨락 대숲을 그늘삼아, 비구니의 경호를 받는 금산사의 거대한 미륵은 호남벌판의 민중을 지켜주고 있다. (가는 길)호남고속도로 김제, 금산사 톨게이트를 나와 표지판 따라 동쪽으로 가면 되고, 대중교통은 김제 원평에서 이용하면 됨.

* 지도 출처 -금산사 홈페이지: http://www.geumsansa.org/default.asp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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