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선 시인
자작나무숲의 선물
‘꿩의 보은 설화’를 간직한 원주 치악산은 그 들머리에 있는 ‘황장금표’와 ‘금강소나무숲’으로 유명하다. 구룡사까지 이어지는 금강소나무 숲길은 활엽수들이 점차 세력을 확장해 들어오면서 이제 옛날처럼 무성하지는 않아도 하늘을 찌를 듯 솟은 기개와 품격은 여전하다. 심재가 누런 빛이 난다고 하여 ‘황장목’이라고도 불리는 금강소나무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독점했다. 금강소나무숲이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은 ‘황장금표’라는 표석을 세워 일반인들이 베어내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룡사 금강소나무 숲에 들어서면 흡사 속계와 선계를 잇는 신비로움까지 깃들어 있어 누구든 상쾌한 기분이 되고 행복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끝도 시작도 보이지 않는 길 중간쯤 적당한 곳에는 벤치까지 놓여 있어 잠시 머물며 사색에 잠기는 여유를 더한다. 치악산의 대표적인 등산로는 이 금강소나무숲에서 시작하여 구룡폭포와 세렴폭포, 사다리병창 거쳐 비로봉에 이르는 길이다. 치악산 계곡 가운데 으뜸인 구룡계곡에서는 구룡사 지나 바로 나오는 구룡폭포가 인상적이다. 특히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짙푸른 소는 ‘아홉 마리 용’을 쫓아내고 절을 세웠다는 구룡사 창건 설화를 뒷받침한다.
구룡폭포와 야영장 지나 세렴폭포까지는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 길.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여기까지가 딱 알맞다. 그러나 세렴폭포 이후, 사다리병창에서 비로봉에 이르는 길은 코가 닿을 만큼 급경사라서 ‘치’가 떨리고 ‘악’이 받친다는 치악산의 또다른 명성을 입증한다. 돌탑 세 개가 지키고 있는 비로봉에서는 남대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지리산처럼 장쾌하다. 다리 힘에 자신 있는 이들은 남대봉으로 해서 상원사로 내려가는 종주 등산로를 택하기도 한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북한산과 같은 명산의 그늘에 가려서 치악산은 늘 밀리는 편이지만 이 산기슭에는 평생을 치악산 사진만 찍는 작가 한 분이 산다. 원주가 고향인 원종호씨다. 원래 미술을 전공한 그는 한국산악회 회원으로서 꾸준히 산악활동을 했고 산에 오르는 틈틈이 치악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치악산을 찾는 작가들이 별로 없던 시절 그가 카메라에 담아둔 치악산 사계 사진에는 고향의 산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생업으로 해오던 사료대리점을 정리하고 새말에서 ‘자작나무숲 미술관’을 연 원씨에게는 최근 ‘횡재수’가 생겼다. 늘 작품의 소재로서 좋아했기 때문에 이십년 가까이 가꿔온 자작나무숲이 그에게 ‘선물’을 준 것이다. 백화점에서 고가로 팔리는 핀란드산 자작나무 수액 못지않은 토종 자작나무 수액이 그야말로 ‘목돈’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정말 놀라운 변화는 원씨 자신에게 일어났다. 유독 봄을 많이 타서 아침에는 일어나지도 못하던 그가 자작나무 수액을 장복하면서 새벽부터 일어나 만여평에 이르는 숲을 가꾸는 ‘괴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십여년 만에 만난 그는 필자가 보기에도 확실히 ‘회춘’의 경지에 들어선 외모였다. 강원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겠다는 새로운 도전과 이를 이뤄내고자 하는 의지로 충만한 그의 눈에서는 곧 탄생할 멋진 작품들의 면면이 보이는 듯했다.
김우선/시인, 전 〈사람과 산〉 편집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