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이후 전세계 자동차 생산 손실
일본산 의존도 높아 수백만대 생산 차질 ‘충격’
재고 최소화 방식탈피·근거리 조달 등 변화 조짐
재고 최소화 방식탈피·근거리 조달 등 변화 조짐
‘90달러짜리 작은 부품 하나 때문에….’
지난달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에어플로우’ 센서 제조업체인 히타치 오토모티브 시스템즈에도 큰 타격을 줬다. 에어플로우는 자동차 엔진의 공기량을 측정해 연료량을 조절해주는 센서다. 히타치의 생산라인이 멈추면서 여파는 일파만파로 퍼졌다. 히타치 에어플로우 센서가 세계시장의 60%를 차지해온 탓이다. 도요타, 지엠(GM), 포드, 푸조-시트로앵 등 고객사 10여곳은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지엠은 미국 시리브포크 공장의 소형 픽업트럭 생산을 중단했고, 독일 아이젠나흐, 스페인 사라고사 공장의 조업도 단축했다. 센서의 값어치는 개당 90달러에 불과하지만 전세계 완성차 업체들을 강타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 부품 없어 멈춰선 공장 동일본 대지진 이후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일본에 대한 부품 의존도가 높은 지엠, 포드, 다임러 크라이슬러 등을 비롯해 전세계의 자동차 업체들이 부품 부족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조업을 단축하는 사태를 빚은 탓이다. 시장예측기관 아이에이치에스(IHS) 글로벌인사이트가 최근에 낸 자료를 보면, 대지진의 여파가 악화할 경우에 6월 초까지 일본에서만 190만대, 미국 등 다른 지역에서도 300만대의 자동차 생산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타격은 미국에서 훨씬 크게 나타났다. 코트라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의 14%가량은 일본산 부품에 의해 만들어진다. 빅3 업체들은 부품 공급이 조기에 회복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미리 감산 계획을 짜고 있다. 대니얼 애커슨 지엠 회장은 지난 19일(현지시각) 미 시엔비시(CNBC)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지진이 발생한 직후에 대응팀을 구성해, 반도체의 경우 일본 기업에서 다른 지역의 안정적인 공급처로 옮기도록 조처했다”며 “이번 사태가 자동차 업계 전반에 불확실성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 JIT에서 JIC 전략으로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른 것은 이른바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으로 대변돼 온 린 생산방식이다. ‘필요한 부품을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공급한다’는 이 방식은 부품 재고를 최소화시키는 게 특징이다. 정희식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도요타의 경우엔 재고를 1주일치 미만으로 가지고 있기도 했다”며 “이는 높은 효율을 보여줬지만 대지진처럼 큰 위험이 닥쳤을 때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이치에스비시(HSBC)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이코노미스트>를 통해 “앞으로는 ‘저스트 인 케이스’(Just in Case)를 통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공급망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공급망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규모의 경제’를 위해 특정 업체에 부품 조달을 의존해온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대지진 이전에도 공급망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며 “미국 업체들이 멕시코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려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자국 내에서 아웃소싱하는 ‘온쇼어링’(Onshoring)이나 인접국을 활용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이라는 해법 찾기는 간단치 않다. 정희식 연구위원은 “위기 대응을 위해 부품 재고를 늘리면 재고 비용 증가라는 문제가 발생하고, 공급업체 다변화 역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절감을 희생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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