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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북적거려야 시장인데…

등록 2007-09-28 19:39수정 2007-09-28 23:21

시장이 북적거려야 시장인데…
시장이 북적거려야 시장인데…
사람 향기 나는 시장 ① 재래상권의 몰락

요즘 전국 재래시장이 북적거린다. 물건을 살 손님들이 아닌 정치인들의 발길이 잦다. 상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서민경제의 상징’으로 대접해주는 게 달갑지 않다. 지난 10여년 동안 이런 대접을 받았지만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다는데 재래시장은 ‘무풍지대’이다.

일부에선 재래시장과 도시 영세 소매상권의 붕괴는 유통산업 구조 고도화 등에 따른 전세계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선진국에서는 구조와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서도 전통 상권을 보호·육성하고 이를 사회안전망 구축과 동반성장의 씨앗으로 삼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한겨레>는 중소기업청과 공동으로 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의 모범사례들을 살펴보고, 국내에서도 부활을 꿈꾸는 재래시장들을 발굴해 매주 한차례씩 소개한다.

대형마트 규제하고 소상공인 보호해주는 프랑스 사례 배울만
‘다웟과 골리앗’의 승패 뻔한 싸움 대신 공존하는 방법 찾아야

국내 재래시장 매출 추이
국내 재래시장 매출 추이
프랑스 파리의 주말은 ‘시장들의 천국’이다. 상점들이 집합한 형태의 상설·비상설 ‘마르셰’(시장)가 파리 시내에서만 89군데에서 열린다. 지난 22일 파리 지하철 알렉상드르 뒤마역을 빠져나오자 펼쳐진 노천시장도 이런 곳 가운데 하나다. 거리 양옆으로 채소·빵·치즈·생선·잡화류 등 장바구니 상품들을 파는 노천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서민들이 많이 사는 파리 동쪽 11구역에서 매주 수·토요일 열리는 ‘마르셰 드 샤론’(샤론 시장)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인근 주택가에서 장을 보러 나온 부부들과 어린이·노인들로 시끌벅적하다. 몇 가지 채소를 산 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한 60대 여성은 “이곳의 10년 단골”이라고 했다. 까닭을 묻자, “교외에 있는 까르푸의 물건이 시장보다 아주 싸거나 다양하면 찾아갈 텐데, 오히려 시장의 물건이 더 많고 다양하다”고 대답했다. 파리시청에서 소상공업 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린 코헨-솔라(60)는 파리 시장의 번성 요인을 경쟁 원리로 설명했다. 그는 “파리시 안에는 까르푸 같은 대형 유통점이 셋밖에 없는데 이는 매장 면적이 300㎡를 넘으면 특별히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며 “시장과 대형 유통점은 직접 경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파리의 시장들은 ‘한정된 파이’를 놓고 대형 유통업체와 다투는 존재가 아니라, 서민의 숨결과 삶의 체취를 보듬는 지역공동체의 자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파리의 시장들과 달리 국내 재래시장은 주로 시설 현대화와 같은 개발논리로만 활로를 모색 중이다. 그러나 뚜렷한 활로가 보이기는커녕 몰락의 늪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국내 재래시장의 몰락 양상은, 지난 1996년 유통업 개방을 뼈대로 한 유통시장 구조 개편이 시작된 뒤부터 뚜렷해졌다.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의 시장지배력 강화와 재래시장의 몰락이 정확히 비례하고 있다. 통계청과 체인스토어협회 자료를 보면, 대형 마트들은 지난 2000년 163개 점포에서 10조5천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2002년 232곳에서 17조4천억원, 2006년 342곳에서 25조5천억원으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반면에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지원센터의 통계로 본 재래시장 점포당 하루평균 매출액은 2004년 51만2천원에서 2005년 47만원, 2006년 35만8천원 등으로 해마다 곤두박질치고 있다.

참여정부는 재래시장과 영세 소매상권에 대해 나름대로 적극적인 지원 활동을 펴왔다. 정부는 2004년 3월 대통령 주재의 재래시장 보고대회를 연 뒤, 지금까지 다섯 차례나 시장 활성화 대책 및 종합계획을 내놓았다. 2003년부터 올해까지 전국 562개 재래시장에 지원된 예산은 7136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재래시장의 위상과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없는 물량 공세는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 사례들을 보면, 재래시장 해결책이 서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동원하는 각종 정책들의 축소판과 같다.

프랑스의 경우 1973년 대규모 점포 규제법안을 제정해 도시 소규모 상점들이 대형 유통업체와 공존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고, 일본에서는 특정 상점가가 아닌 지역공동체 전체를 관리한다는 개념의 ‘마치즈쿠리(마을만들기) 회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영국 재래시장은 옷·수공예품 등 패션 부문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나 외국인들도 자유롭게 진입이 가능한 사회안전망 구실을 톡톡히 한다.

유대근 우석대 교수는 “국내외 재래시장의 성공모델들은 공동 마케팅, 관광 명소화, 거리 재단장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며 “대형마트 출점 규제가 됐건 도심 재개발이 됐건 이를 관통하는 핵심 논리는 소상공인이 살아야 서민경제가 건강해진다는 믿음”이라고 설명했다.

파리/박현정,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임주환, 파리/박현정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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