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그렇구나
제조·수입업자가 판매자에게 팔기를 요청하며 표시한 값
큰 가격차 99년 폐지…값 안내리고 더 쉽게 올려 부활
제조·수입업자가 판매자에게 팔기를 요청하며 표시한 값
큰 가격차 99년 폐지…값 안내리고 더 쉽게 올려 부활
신라면 730원, 새우깡 900원, 초코파이 3000원.
얼마 전부터 일부 라면과 과자, 빙과류 포장지 뒷면에 가격이 찍혀 나오고 있습니다. 폐지된 지 1년1개월 만에 부활된 권장소비자가격이죠. 물론 지금도 권장소비자가격으로 제품을 파는 곳은 편의점과 일부 소매점 정도일 뿐 대형마트나 할인점에서는 10~20%가량 저렴한 가격에 판매합니다.
권장소비자가격은 공산품을 생산하거나 수입·유통을 하면서 자신의 상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지는 않는 사업자가 제품에 표시하는 가격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제조자나 수입업자가 판매자에게 이 정도 가격으로 팔기를 요청하는 권장 또는 희망 판매가인 셈이죠.
1999년 6월 정부는 일부 품목의 권장소비자가격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고가표시 등으로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였지요. 전자상가나 대리점에서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같은 값비싼 가전제품을 살 때 가격표와 실제 가격이 몇십만원씩 차이가 나서 정말 싸게 산 건지 갸우뚱했던 경험들 있으실 겁니다. 이처럼 ‘있으나마나’한 가격표를 없애고 차라리 소매업자들이 가격경쟁을 하도록 유도해 소비자들에게 인하 혜택을 주자는 취지였지요. 정부는 초기에 비교적 고가인 의류와 가전제품의 권장소비자가격 표시를 금지했고 이후 금지 품목은 생활용품, 식품 등으로 늘어나 현재까지 200여개의 공산품에 권장소비자가격이 사라졌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최종 판매업자가 저마다 자체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오픈 프라이스’가 바로 바뀐 가격제도이지요.
그런데 지난 6월 말 지식경제부는 라면과 과자, 아이스크림과 빙과류 등 4품목의 권장소비자가격을 부활하기로 했습니다. “가격인하 효과는 거의 없고 편법 가격 인상, 가격편차에 따른 소비자 혼란 등을 가중시킨다”는 이유였습니다. 봄부터 주요 제과업체들이 밀가루, 설탕 등 재료가격 인상을 이유로 줄줄이 제품 가격(출고가)을 올리고 이에 따라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편의점 등의 소매가도 올라가자 가격인하 효과는 없고 오히려 제조사들이 가격표가 없다는 이유로 더 손쉽게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예를 든 몇가지 품목을 빼놓고는 아직도 권장소비자가격을 붙인 과자나 아이스크림은 볼 수 없습니다. 라면 정도를 제외하곤 식품업계에서 아직도 얼마짜리 가격표를 붙여야 할지 고민중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권장소비자가격 재도입 배경에는 물가 인상 억제라는 ‘압박 카드’가 있으니 단순히 지금 팔고 있는, 그러니까 최근 올린 가격을 떡하니 붙이기에는 부담스럽습니다. 이처럼 업계가 주저하자 최근 지식경제부는 ‘주요 식품업체가 123개 제품을 오픈 프라이스 도입 전인 지난해 6월 수준 가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늦어도 올해 말까지 가격을 표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정부로부터 ‘선제공격’을 당한 업계의 표정은 밝지 않아 보입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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