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서울 곳곳에 ‘선영아 사랑해’라고 적힌 종이가 나붙었다. 지금은 일반화한 티저 광고(짧은 문구나 이미지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광고)의 전설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여성 대상 포털 ‘마이클럽’ 광고였다. 16년이 지나 다시 등장한 화장품 브랜드 아이소이의 ‘선영아 사랑해’ 광고가 국내뿐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일본 네티즌에게까지 전해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여성 혐오’ 반대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광고 속 성차별적 시선과 고정관념에 문제의식을 갖고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하는 소비자들은 색다른 메시지를 담은 광고의 등장을 반가워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선영아 사랑해’에 뒤이어 나오는 문구에 호응하고 있다. 광고 시리즈 1편(사진) 속 화자는 16년이 지난 오늘 ‘이 나라는 선영이에게 덜 해로운 곳이 되었나요?’라고 묻는다. 2편에서는 여성을 향해 “화장을 안 해도, 다이어트를 안 해도, 결혼을 안 해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유해 성분을 넣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아이소이 화장품은 그 뒤에야 등장한다.
“광고주도 여성,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도 여성이어서 가능했다. 광고계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남성 비중이 말도 안 되게 높은데, 대부분의 남성 결정권자들은 이런 방향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대홍기획이 만든 이 광고 제작에 참여한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김진아씨는 기존 광고와 가장 다른 점은 ‘여성 결정권자’가 참여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여성 기업인인 아이소이의 이진민 대표는 마이클럽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16년 전 마이클럽 ‘선영아 사랑해’ 티저 광고를 제작했던 대홍기획 쪽에서도 여성인 권현선 크리에이티브디렉터가 참여했다.
이번 ‘선영아 사랑해’ 광고는 다른 의미에서 전설적인 사례로 꼽힐는지 모른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성적 대상화를 경계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강조하는 펨버타이징(페미니즘과 광고의 합성어)이 광고계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 사례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소이 광고가 등장했지만 이런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또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진아 카피라이터는 사회의 변화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광고계를 꼬집었다. “남성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광고계 종사자들의 영향이 커 여전히 성차별적 내용이 담긴 광고들이 많이 나온다. 아이소이 같은 광고가 또 방영될 가능성은 정말 희박하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