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의 맞춤형 화장품 ‘르메디 바이 CNP’에서 피부 검사를 받는 고객. LG생활건강 제공
서울 이화여대 앞에 지난달 말 문 연 화장품 매장 ‘르메디 바이 시엔피(CNP)’는 언뜻 보기에 약국 같다. 흰 가운을 입은 상담자들이 고객을 맞고 약병처럼 생긴 제품들만 전시돼 있다. 매장에 들어가면 피부과 병원이나 피부관리숍처럼 기기들을 이용해 색소침착, 모공, 수분량 등의 상태를 측정하는 피부 테스트를 거친다. 이를 가지고 상담해 피부 상태에 적합한 에센스를 혼합실에서 만들어준다. 피부 테스트에서 ‘나만의’ 에센스 제품을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정도다.
비스포크(수제 양복)와 보석 등 일부 사치품에 적용되던 맞춤서비스(커스터마이징)가 대중 소비재의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건 화장품 업계다. 엘지(LG)생활건강이 맞춤형 화장품을 표방하며 내놓은 브랜드 르메디 바이 시엔피는 사전예약으로 운영하는 1:1 서비스로 보름 만에 100명 넘게 방문했다. 피부 고민에 따라 세 가지 베이스 세럼과 다섯 가지 앰풀 중 골라 배합하는 식으로 제작한다. 보습크림으로 유명한 키엘도 비슷한 방식으로 만드는 ‘아포테커리 맞춤 에센스’를 23일 출시할 예정이다.
커스터마이징 화장품에 먼저 뛰어는 건 아모레퍼시픽이다. 지난해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소비자 피부 타입이나 취향에 따라 선택·제조할 수 있다는 내용의 ‘맞춤형 화장품 시행령’을 발표한 뒤 라네즈 히트 상품 ‘투톤립 바’에 맞춤 서비스를 접목한 ‘마이 투톤 립 바’를 그해 8월에 선보였다. 피부색 분석을 받은 뒤 상담을 통해 두 가지 색을 골라 즉석에서 립스틱을 만들어준다. 메인 색 14가지와 보조 색 13가지 중 하나씩 고르는 식이다. 립스틱에 원하는 문장까지 새겨주면서 가격은 기존 투톤 립 바(2만5000원)와 같아 중국 관광객들한테도 입소문이 났다. 라네즈는 커스터마이징 립스틱의 성공에 힘입어 지난해 11월부터는 3개 매장에서 기초 제품인 ‘워터뱅크 크림’ 맞춤 제작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발 길이뿐 아니라 발볼 넓이, 발등 높이까지 정확하게 측정하는 3D 측정기로 신발을 추천하거나 맞춤 제작을 해준다. 롯데백화점 제공
5㎜ 차이의 크기에 발을 맞출 수밖에 없었던 신발에서도 커스터마이징 바람이 불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7월 ‘3D 발사이즈 측정기’를 본점과 잠실점 등 4개 점포에 설치했다. 길이와 볼 넓이뿐 아니라 발등 높이까지 재고, 이를 바탕으로 적합한 신발을 추천하거나 수제화를 만들어준다. 월평균 이용 건수는 1500건에 달한다. 금강제화는 맞춤 서비스는 아니지만 2.5㎜ 단위의 ‘하프 사이즈 주문 서비스’를 지난해 하반기에 도입해 좋은 반응을 얻자 적용 모델을 20가지에서 40가지로 늘렸다.
음료에 들어가는 모든 요소를 직접 지정할 수 있는 스타벅스코리아의 맞춤음료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사이렌 오더.’ 스타벅스코리아 제공
식음료업계에서도 맞춤형 서비스가 늘고 있다. 에스프레소 샷과 우유 종류, 시럽, 얼음, 탄산의 양까지 모든 요소를 조절해 주문할 수 있는 스타벅스코리아의 앱 ‘사이렌 오더’는 누적 이용 횟수가 1500만건을 돌파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갈수록 인기 제품의 지속성이 떨어지면서 기업들은 대규모 설비투자를 하기보다 기존의 자원으로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맞춤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이 됐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성비’ 측면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한 맞춤서비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나 핸드폰 같은 고가 제품도 과도한 기본 옵션이 줄어들며 맞춤형 선택 서비스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