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제화업체와 대형 할인점 등 유통업체들이 상품권을 팔면서 신용카드 영수증 조작을 통해 거액의 탈세를 부추기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31일 금강제화·에스콰이아·엘칸토 등 유명 제화업체 매장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명동 거리를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상품권’6년간 수백억 탈세 〈한겨레〉는 제화업체들의 상품권 신용카드 영수증 조작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2일 서울 명동에 있는 에스콰이아 매장을 찾아가 신용카드로 10만원짜리 상품권을 구매해 봤다. 매장 직원에게 “신용카드로 상품권을 사면 연말정산을 할 때 소득공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말부터 건냈다. 그러나 이 직원은 “일반 상품 구매로 카드를 결제하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연말정산 때 얼마든지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매장은 또 상품권을 팔 때는 별도의 상품권 전용 단말기를 써야 하는데도, 일반 카드 단말기로 결제를 해주고 있었다. 또 세금계산서 발급도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사업자등록증과 신분증만 있으면 금액에 관계없이 세금계산서를 끊어주겠다”고 말했다. 직원에게 다시 “현행법에 상품권 같은 유가증권에 대해서는 세금계산서 발급이 금지돼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원하면 그냥 발급해준다”고 대답했다. 근처에 있는 금강제화 매장에서도 신용카드로 10만원짜리 상품권을 구매해봤다. 이 업체는 특판용이라고 써 있는 단말기를 이용해 결제를 해줬는데, 직원은 “자체적으로 상품권 판매 관리를 위해 다른 단말기를 쓰고 있을 뿐, 일반 상품 구매 결제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설 선물에 쓰려고 상품권을 대량 구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더니, 이 직원은 “개인 신용카드로도 상품권을 100만원 이상 구매할 수 있고, 이 경우엔 세금계산서도 발급해 줄 수 있으니 다시 찾아오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동대문에 있는 대형할인점인 삼성테스코의 홈플러스에도 전화로 상품권 구입을 문의한 결과, 직원은 “상품권 구입은 일반 상품 구매 형태로 제한없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상품권 카드구매 100만원 제한 ■ 유통회사-카드사-고객의 ‘합작 탈세’=상품권은 물품이 아니고 단지 화폐처럼 물품을 살 수 있는 유가증권이기 때문에,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은 신용카드 결제로 상품권을 구입한 금액은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또 자금 출처 등을 숨기기 위한 목적의 ‘깡’(상품권 불법 할인매도·매입)을 막기 위해, 개인 신용카드 1장당 상품권 구매 한도를 한달에 10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도 상품권 카드 구매가 일반 상품 구매처럼 둔갑할 수 있는 것은 유통업체(상품권 발행업체)와 카드사, 또 이를 구매하는 개인이나 법인 고객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상품권을 구입하는 법인은 상품권을 일반 상품 구매 형태로 카드 결제를 하면 세금계산서를 받아 경비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원청업체인 대기업 담당자 등에게 설날 선물용으로 10만원짜리 할인점 상품권 30장을 샀다는 한 중소 전자업체 사장은 “세금계산서를 끊어왔다”며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는데 나만 정직하게 세금을 낼 이유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또 일부 기업은 자금 추적과 세원 노출을 피하기 위해 카드로 구입한 상품권을 불법 할인한 뒤 비자금이나 경비를 마련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은 소액 구매가 많을 뿐 아니라 상품권을 카드 일반 구매 형식으로 사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경우에 따라 악용될 소지가 얼마든지 있다. 실제 정아무개씨는 지난해 4월 외환카드로 에스콰이아 상품권 2700만원 어치를 구입해 그해 연말정산에서 500만원의 소득공제를 받았다. 상품권 발행업체들은 고객들에게 이런 편의를 봐주는 대신 상품권 매출을 올리고 있다. 카드사들도 유통업체의 가맹점 번호가 상품권 가맹점이냐 일반 가맹점이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상품권 카드 결제를 적발할 수 있지만, 역시 매출 증대를 위해 사실상 이를 묵인하고 있다. 정확한 탈세규모 파악 힘들어 ■ 전체 탈세 규모 얼마나 될까? = 국내에서 발행·유통되는 상품권은 유명 백화점, 제화업체들 외에 관광·문화·도서·음식 등 500여종이 넘고 시장 규모도 2003년 말 현재 7조원에 이르기 때문에, 정확한 탈세 규모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또 상품권을 발행하는 모든 업체가 비정상적으로 판매를 하고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한겨레〉가 확인한 결과, 롯데·현대·신세계 백화점은 신용카드를 이용해 상품권을 구입할 때 일반 카드단말기가 아닌 별도의 상품권 단말기를 통해 결제하고 있었다. 다만 제화업체들의 매출 구조를 통해 대략적인 규모를 추정해 볼 수는 있다. 김정부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03년 제화업체들의 상품권 발행액은 총 1조9060억원이었는데, 제화업계 상품권 발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금강·에스콰이아·엘칸토 등 제화 3사의 재무제표상 상품권 판매액은 3180억원에 불과했다. 두 액수의 차액인 1조6천억원은 상품권이 일반 상품 판매 형태로 팔려 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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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진 박효상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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