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윤희철(40)씨는 최근 고무줄이 들어있어 허리띠를 매지 않아도 되는 일명 ‘밴딩팬츠’를 자주 입는다. 헐렁하고 편한 느낌이 좋아서다. 윤씨는 “허리가 조이는 바지를 입다가 밴딩팬츠를 입으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 난다. 오래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에게 이만한 바지가 없다”고 말했다.
남성용 밴딩팬츠가 인기다. 시장에서 제품이 동나 사려면 대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져 ‘고무줄 바지 대란’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무줄 바지는 과거 ‘몸빼’처럼 여성용 바지에는 흔한 제품이었으나, 남성 사무직들 사이에서 유행이 된 것은 최근 벌어진 이례적 현상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에프엔시의 ‘바이시리즈 247팬츠’가 대표적이다. 24시간 7일 동안 입어도 편하다는 뜻의 247팬츠는 출시 때마다 품절 대란을 일으키고 있다. 6일 현재 9번째 재입고 상품까지 ‘완판’됐다. 같은 회사의 ‘아편(아주 편한)팬츠’도 시장 테스트용으로 1천장을 사전 판매했는데 금세 팔려 재입고해 팔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과거 남성 바지는 몸에 달라붙는 ‘핏’이 중요했는데, 최근엔 헐렁하고 편안한 바지가 유행이다. 편하다는 입소문이 직장인들 사이서 퍼지면서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너무 편해서 감탄을 하게 된다는 유니클로의 ‘감탄팬츠’와 ‘앵클팬츠’도 주요 사이즈인 29~33인치짜리가 품절된 상태다. 엘에프(LF)의 남성복 브랜드 티엔지티(TNGT)는 “지난해보다 밴딩팬츠 제품군 매출이 15% 늘어났다”고 밝혔다.
느닷없는 남성용 고무줄 바지의 인기는 전반적으로 옷을 헐렁하게 입는 ‘오버사이즈’ 패션의 유행과 불황 지속이라는 사회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엘에프 관계자는 “밴딩팬츠는 신축성 때문에 허리 사이즈가 줄든 늘든 계속 입을 수 있는 데다가, 정장과 캐주얼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경기 불황에 걸맞은 아이템이다”고 말했다.
더이상 정장을 고집하지 않는 기업 문화도 한 몫 했다. 직장인들이 양복을 입지 않아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이다. 심지어 가장 보수적인 옷차림을 고집하던 금융권에서도 양복 강요를 포기하고 있다.
패션 칼럼니스트 심정희씨는 “양복이라는 딱딱한 복장으로 종신 고용을 보장하던 조직에 순응했던 과거 직장인들과 달리, 과도한 경쟁과 불확실한 미래가 공존하는 불황이란 현실에서 ‘옷이라도 편하게 입자’는 새로운 직장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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