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배달)·야놀자(숙박)·직방(부동산 중개) 등 플랫폼 기업들의 등장으로 여러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수수료와 광고료를 둘러싼 싸움이 대표적이다. 플랫폼상 거래는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던 전통 상거래와는 구조가 다른 탓에 기존 규칙에 포섭되지 않는다. 갈등이 규제 회색지대에서 일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국회에선 플랫폼과 관련된 거래 규칙을 새로 만들기 위한 입법 노력이 한창이다.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 이용자들도 플랫폼을 이용하며 누리는 편리함의 댓가로 ‘이용자 요금’을 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용자 요금 논의는 플랫폼-입점업체 사이에 머물렀던 논의 범위를 소비자로 넓힌다. 플랫폼-입점업체-소비자 3자가 혜택과 비용을 나누는 틀을 짜보자는 얘기다. 이용자 요금은 플랫폼 갈등을 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이용자 요금, 대체 뭐야?
이용자 요금은 순수하게 플랫폼 이용에 따른 편익에 지불하는 별도 비용으로,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공동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배달앱-소상공인·자영업의 바람직한 상생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처음 공개 언급됐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박충렬 국회입법조사관은 “배달앱(플랫폼) 사업자는 음식점주(자영업자)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새로운 수익모델 개발에 힘쓸 필요가 있다”며 “소비자 편익이 확대되는 수익모델의 경우, 그에 따른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배달앱을 사례로 든 설명이지만, 모든 오투오(O2O, Online to Offline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하는 현상) 서비스 플랫폼에도 해당하는 제안이었다.
박 조사관은 앞서 지난해 8월 발표한 ‘배달앱사업자와 음식점주 사이의 상생을 위한 과제’ 보고서에서도 “소비자들이 플랫폼으로 편리하게 음식을 선택하고 결제하면서 누리는 이득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배달된 음식의 맛과 질이 떨어지거나 음식점주를 비롯한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배달앱 서비스가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최로 ‘배달앱-소상공인·자영업의 바람직한 상생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배달비 말고, 돈을 또 낸다고?
당장 혼란스러운 건 기존에 배달앱을 사용해 음식 등을 주문하는 소비자들이 내는 배달비와는 이용자 요금이 어떻게 다르냐다. 현재의 배달비는 이용자 요금과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단순히 플랫폼 이용에 대한 지불이라기보다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에 따라 입점업체의 부담을 떠안는 성격이 강한 탓이다. 실제로 플랫폼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배달비가 본격적으로 청구된 건 최저임금이 크게 올랐던 2018년부터다. 그 해 5월 교촌치킨은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 증가를 이유로 “주문 건당 2천원씩 배달서비스 이용료를 받겠다”고 선언했다.
야놀자나 직방처럼 배달과는 무관한 서비스의 경우, 배달비 명목의 비용을 소비자에게 부과하지 않는다. 이용자 요금의 취지는 이처럼 배달 서비스 중개가 아닌 플랫폼 일반으로 시야를 넓혀 소비자들한테서 플랫폼 이용료를 거둬 이를 플랫폼 갈등을 풀 재원으로 쓰자는 것이다.
배달의민족, 넷플릭스 로고. 각 사 누리집 갈무리
■돈을 낸다면, 누구에게?
이용자 요금의 논의 범위는 플랫폼을 이용하더라도 최종 소비는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오투오 플랫폼이다. 오투오 서비스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돈이 누구에게 돌아가게 되는지가 다소 불분명해 이해당사자들의 수익 배분 문제가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예컨대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츠 구독 서비스는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새로운 소비 방식을 만들어냈고 소비자가 낸 돈의 전달구조가 비교적 명확하다. 소비자들은 플랫폼에 월 정액 요금을 내고, 플랫폼은 소비자들이 낸 돈을 모아서 ‘비례배분제’ ‘판권료 정산’ 같은 별도의 정산 절차를 거쳐서 사후에 저작권자 쪽에 비용을 지불한다.
일반 오투오 서비스는 사정이 다르다. 배민·야놀자·직방 등은 소비자와 자영업자가 직접 거래하던 사이에 끼어든 서비스이고, 자영업자가 받는 음식값이나 숙박비에서 건건이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다.
콘텐츠 구독 플랫폼과 비교하면 소비자의 비용 지불, 입점업체와의 정산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서비스 요금에 점주의 몫과 플랫폼의 몫이 섞여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이용자 요금 개념은 지금처럼 음식값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 게 아니라, 음식값이나 숙박비는 점주의 몫으로 하고 플랫폼 이용에 따른 편익에 적정한 요금을 매긴 뒤 이 요금을 명시적으로 부과해 누가 어떤 돈을 가져가는지 명확히 하자는 취지도 있다.
정작 플랫폼 기업들에게도 이용자 요금은 생소한 방식이다. 익명을 전제로 취재에 응한 한 오투오(O2O) 플랫폼 기업 관계자는 “고려해보지 않은 개념”이라며 “그동안 플랫폼 사업은 많은 거래가 일어나면 이에 따라서 더 많은 점주들이 참여하는 구조를 기본으로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플랫폼 기업의 팀장급 직원도 “플랫폼 기업은 점주들을 경쟁하게 하면서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 역할이고 플랫폼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순기능”이라며 “이용자들에게 돈을 더 받는 방식은 (현재로선)도입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5월6일 오후 서울 강서구 가양동 미스터피자 강서점에서 열린 배달앱 상생과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대책 점검을 위한 현장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용자 요금의 근거와 의미
소비자에게 이용자 요금을 별도로 물리자는 주장의 배경은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은 기존엔 없던 ‘편리함’을 혜택으로 누리지만, 정작 이에 상응하는 명시적 댓가는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누리는 편리함의 반대편엔 플랫폼과의 거래관계에서 극심한 수수료와 광고료 압박을 받는 입점업체의 현실이 놓여 있다. 네트워크 효과가 강력한 플랫폼 경제의 속성상 플랫폼 기업들은 독점을 지향하는 사업전략을 펴며 저마다 마케팅과 프로모션에 큰 돈을 쓰면서 수년간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 대신 그 압박은 고스란히 입점업체들에게 더 높은 수수료와 광고료로 전가되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플랫폼의 적자부담이 입점업체에 떠넘겨지는 구조다. 만일 소비자들이 누리는 편리함의 댓가로 이용자 요금을 낸다면 플랫폼에겐 새로운 수익원이 생기는 것이니만큼 입점업체들의 부담 경감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겠냐는 논리다.
■기대효과 정말 나타날까?
하지만 이용자 요금이 실제 입점업체(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는 결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외려 플랫폼 기업이 입점업체와 이용자 양쪽에서 돈을 받으며 배를 불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설령 이용자 요금을 받는다고 해서 입점업체한테서 수수료를 적게 받으라고 법으로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완책으로 법률보다 하위에 있는 규칙이나 지침 등을 통해 플랫폼 기업이 받는 수수료나 이용자 요금의 배분 비율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방법 등이 거론되기는 한다. 하지만 민간 상거래에 정부나 법률이 너무 많이 간섭한다는 비판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방식이다.
실제로 무료 운영에서 추가로 요금을 받는 서비스를 도입한 플랫폼 기업들은 대부분 (입점업체를 상대로 한)수수료 인하보다는 (소비자를 상대로 한)새로운 서비스 추가 제공을 선택했다. 쿠팡의 로켓와우나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유튜브 프리미엄, 아마존 프라임 등이 그 예다. 이들은 무료로 플랫폼을 운영하다 추가로 요금을 받는 회원제(멤버십)를 도입했다. 하지만 로켓와우나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회원들이 추가로 내는 돈은 입점업체와의 상생을 위해 쓰이는 게 아니라, 빠른 배송 등 추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플랫폼의 수익을 늘리는데 쓰이는 실정이다.
서울 시내에서 로켓배송 중인 쿠팡맨 모습. 연합뉴스
■“실현가능성 낮아”…대체로 ‘부정적’
정보기술(IT) 및 플랫폼 분야 연구자들은 이용자 요금에 대해 대체로 실현가능성이 낮다거나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한 증권사의 유통 담당 애널리스트는 “이용자 요금은 현재로선 현실성이 없는 방안”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지금의 플랫폼 시장은 낮은 가격으로 트래픽을 모으는 전략으로 무한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용자 요금을 부과하는 플랫폼은 소비자들이 이탈할 것이라서 쉽게 시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쟁력이 없는 플랫폼들이 정리된 뒤라면 모르지만, 지금처럼 무한경쟁과 더불어 저가경쟁을 하면서 플랫폼이 넘쳐나는 상황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안”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회원제나 이용자 요금이 아니더라도 이미 소비자들이 우회적으로 플랫폼 이용료를 부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컨설팅 회사에서 플랫폼 분야를 연구하는 한 임원은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음식값 등 서비스 비용이 전보다 높아진 게 사실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점주들만 수수료 등 비용 압박을 받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도 간접적으로 플랫폼 이용 요금을 부담하고 있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비용만 더 내라고 한다면 플랫폼은 소비자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며 “추가 요금에 상응하는 또 다른 혜택이 없다면 이용자 요금은 현실적으로 도입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다만 정보기술 분야에 정통한 또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용자 요금이 생기면 결과적으로 서민들이 부담하는 물가만 상승하는 꼴이 될 수 있다”면서도 “지금 상태로 두기에는 자영업자들이 부담하는 수수료가 매출 성장을 넘어설 만큼 과도한 측면도 있다. 첨예한 문제이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