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를 바라보는 중앙은행들의 평가가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일시적”에서 “예상보다 높다”라는 것으로 강조하는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를 두고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판단의 실수를 인정했다는 의견과 아직 기존 입장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이 함께 나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15~16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올해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4%(지난 3월 전망)에서 3.4%로 높였다. 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높고 지속적일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날 연준 위원들은 점도표에서 금리 인상 시점을 2023년으로 1년 이상 앞당겼는데, 배경에 물가가 있다는 추측도 나왔다.
연준은 그동안 물가 급등에 일시적 요인이 많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또 지난해 잭슨홀 미팅에서 완전 고용을 위해서는 물가 목표치(2.0%)를 한동안 넘는 것도 감내하겠다는 새로운 통화정책을 알리기도 했다. 따라서 연준의 이례적인 물가 인식을 놓고 여러 평가가 뒤따랐다.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는 “파월 의장이 고인플레이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매파(긴축 선호) 변화는 인플레이션 때문이다”고 말했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은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경제가 더 빨리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이번 변화는) 인플레이션보다 코로나19에 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연준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기에는 아직 불분명한 것이다. 연준은 개인소비지출 지수 상승률 전망치도 올해는 1.0%포인트 큰 폭 올렸지만, 내년과 내후년은 각각 0.1%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그리고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물가 상승세는) 멈출 것이다”고 말했다. 올해 이후에는 물가 상승세가 둔화한다는 연준의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물가 수준’의 측면에서 보면 이미 올해 많이 오른 물가가 내년, 내후년에도 꺾이지 않고 꾸준히 상승한다는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하다고 볼 수도 있다.
파월 의장의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높고 지속적일 가능성”(inflation could turn out to be higher and more persistent than we expect) 발언도 다소 애매하다. ‘예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기존 3~4월 판단보다 중고차, 목재 가격 상승 등 공급 측 병목현상이 심하다는 해석과 아예 기존 인플레이션 입장에 비해 현실이 다르다는 해석 등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
김진일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연준의 물가 인식이 바뀐 것인지는 물가 자체의 수준, 전년 대비 물가 상승률, 파월 의장의 발언 등을 두고 어떤 것을 더 비중 있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물가 인식 변화는 연준 뿐만 아니다. 한국은행도 지난 4월 “일시적인 요인이 있다”고 강조했으나 이달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은은 4~6월 사이 백신 확대 등으로 예상보다 경기가 빨리 회복되면서 물가에 대한 전망도 바꿨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오는 24일 이주열 총재가 직접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를 주재한다. 최근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상승률도 계속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기대 인플레이션 관리 차원에서도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발언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한 입장도 주목된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