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이억원 1차관과 미국 재무부 윌리 아데예모 부장관이 지난달 말 ‘디지털세’와 관련해 회의를 진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관심이 쏠린다. 이번 회의는 미국 쪽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
4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억원 1차관은 지난 6월30일 밤 아데예모 부장관과 전화 통화를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협의 중이던 디지털세와 관련한 양국 입장에 대해 논의했다. 디지털세 논의는 2012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글로벌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려고 논의해 왔지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구글, 페이스북 등 자국 ‘빅테크’ 기업들을 보호하려고 이견을 내면서 속도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올 초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글로벌 최저한세(global minimum tax)’를 제안하는 등 협의에 탄력이 붙었다. 결국 6월 초 주요 7개국(G7)이 디지털세 도입에 합의했고, 최근 130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포괄적 이행체계(IF·Inclusive Framework)’ 총회에서 합의안을 마련했다.
기재부와 미 재무부는 이번 회의에서 디지털세와 관련한 양국의 입장을 주고받았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반도체 수출이 주력인 삼성전자,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이 과세권 배분 대상 기업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 중간재 업종은 제외하자는 주장을 펼쳐왔다. 또 글로벌기업의 초과이익 가운데 매출 발생국에 나눠주는 분배율을 20%로 제한하자는 주장을 해왔다. 반면 미국은 중간재 업종은 물론 금융업 등 대부분의 업종을 포함하자는 입장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재무부가 먼저 회의를 요청하는 경우는 이례적인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한국의 양보를 구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이밖에 양국은 코로나19에 따른 양극화에 대한 정부의 노력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최근 발표된 130개국 합의안에는 우리 정부 주장과 달리 중간재 업종도 과세권 배분 대상에 포함됐고, 초과이윤 배분율도 20∼30%로 정해졌다. 다만, 중간재 업종은 완제품이 아닌 탓에 과세권 배분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향후 논의에서 정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는 9∼10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어떤 합의를 이룰지도 관심이다. 홍 부총리는 재무장관회의에서 전체 회의는 물론 옐런 미 재무장관과의 단독 회담도 가질 예정이다. 앞서 홍 부총리는 지난 1일 브리노 르 메르 프랑스 재무장관과 화상 면담을 열어, 재무장관회의를 앞두고 디지털세 등 주요 의제를 논의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기재부 관계자는 “국제 사회에서 논의하는 내용과 관련해 자주 각국 정부 간 정보를 공유하고 격의 없이 논의한다”며 “그만큼 우리 위상도 높아졌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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