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세 수입이 정부 예상보다 10조원 이상 더 많을 전망이지만, 잘못된 세수 예측으로 올해 이를 쓸 방법이 없는 처지다. 소상공인 손실보상이나 경영위기업종 지원 등 쓸 곳은 많지만, 이를 위해 예산을 마련하는 절차를 밟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1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예상보다 더 들어온 세수는 내년 국채 발행 축소와 세계 잉여금에 쓰일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7월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때 올해 세수 전망치를 대폭 수정한 바 있다. 지난해 제출한 올해 본예산의 세수 전망치보다 무려 31조5천억원이 늘어났다. 여기에 더해 경기 회복과 코로나19 장기화에도 달라진 소비 패턴 등으로 추경 당시 수정 전망보다도 11조∼13조원 가량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 안에 추가 세수를 활용할 계획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추가 세수는 세계 잉여금으로 내년 국채 발행 축소나 추가경정예산 등에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 곳간에 들어온 돈은 물론 나갈 돈도 예상보다 늘었다. 세계 최초로 법제화한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위한 예산은 1조원인데 지원은 2조원 넘게 필요한 상황이다. 이달 초 출범한 소상공인 손실보상심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손실보상 신청이 100만건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2조원도 모자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 따른 영업금지·제한 업종을 제외한 다른 위기 업종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 중인데 역시 재정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날 ‘경기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업종별 소관 부처에서 개별 지원책들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여행·관광업 등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세탁업 등 소상공인 업종은 중기부가 지원 방안을 마련 중이라는 뜻이다. 정작 지원을 위한 재정 지출 협의를 해야 하는 기재부는 소극적이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지금 공식화돼서 무언가를 하는 건 없다”고 말했다. 수입과 지출 전망이 틀리다 보니, 정작 쓸 곳에서도 소극적인 모양새다.
이런 양상은 과거 2017∼18년 막대한 추가 세수가 발생했을 때와 비슷하다. 두 해 모두 기재부 전망보다 많은 20조원 이상의 세수가 걷혔고, 이를 국고채 상환이나 이듬해 추경 재원으로 활용했다. 2018년 4월 ‘일자리 추경’과 2019년 4월 ‘미세먼지 추경’에 잉여금이 각각 2조6천억원, 4천억원이 쓰였다. 올해 남는 세수 역시 내년에 이처럼 쓰일 가능성이 크다. 기재부는 거둔 세금을 다시 민간으로 돌리지 않으면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를 경계해왔다. 하지만 올해도 ‘공염불’이 된 셈이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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