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웃돈 건 9년여 만이다. 한국은행이 보는 적정 물가 상승률(2%)에 견줘 1%포인트 남짓 더 높다. 최근의 물가 오름세는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 외에도 국제 유가 급등과 같은 공급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임금 상승이 뒤따르지 않으면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의 물가 부담은 확대될 전망이다.
우선 물가상승률이 3%를 넘어선 이유는 뭘까. 이는 통계청이 내놓는 물가 기여도 수치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품목성질에 따라 산출한 물가 기여도를 보면, 석유류의 기여도가 1.03%포인트에 이른다.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 상승만으로 3.2% 물가 상승률의 3분의 1이 설명된다는 얘기다. 실제 석유류 품목별 가격 상승률은 전체 상승률을 크게 웃돈다. 휘발유가 26.5%, 경유 30.5%, 자동차용 엘피지(LPG) 27.2%씩 1년 전보다 가격이 올랐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카드를 최근 빼 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부는 오는 12일부터 휘발유 등에 붙는 세금을 20% 덜어주기로 했다. 다만 물가 안정 효과는 1~2주 뒤에 나타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한다. 유류세 인하 전에 개별 주유소가 확보한 물량이 소진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석유류 가격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석유제품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제유가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상황이어서다. 오건영 신한은행 부부장은 “조만간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 회의에서 증산 합의 가능성이 작다. 국제유가는 내년에도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이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락세인 원화 가치도 국내 석유제품 가격 상승 요인이다.
외식비 등 개인서비스 요금이나 전기료와 같은 공공서비스 요금 상승세도 물가를 끌어올리는 숨은 요인이다. 개인서비스와 공공서비스를 합한 물가 기여도는 1.56%포인트다. 전체 물가의 절반이 서비스 요금 상승으로 풀이되는 셈이다. 물론 지난해 10월 통신비 인하에 따른 기저효과가 여기엔 반영돼 있지만, 경기 회복과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기대감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력과 소비 활동이 강해진 영향도 서비스요금 상승에 불을 당긴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수요 압력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 기준) 상승률이 2.8%로 한 달 전보다 0.9%포인트나 뛴 것도 이를 가늠케 한다.
현재의 물가 상승은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에 더 큰 부담으로 다가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의 지출이 몰리는 생필품 중심으로 가격이 뛰어서다. 통계청의 가계동향 자료를 보면, 올 2분기 기준 소득 하위 20% 가구는 ‘식료품·비주류 음료’나 ‘주거·수도·광열’ 등에 각각 총 지출의 약 40%를 썼다. 반면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가구의 해당 품목 지출 비중은 약 23%에 그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현재는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예산을 추가 편성할 수 있는 시점도 아니어서 (취약 계층의 물가 부담을 덜어주기 쉽지 않다”며 “다만 정부가 공공요금 동결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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