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시의 스태튼 아일랜드 지구에 있는 한 주유소에서 운전자가 휘발유를 채우고 있다. 이날 미국 노동부는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작년 동월보다 6.2% 급등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현재 물가 급등은 시작, 중간, 끝이 있는 과정이다.”(9월29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혼란 상황에서 글로벌 공급망 예측은 평상시보다 어려운 문제다.”(11월3일 파월 연준 의장)
공급망 차질에서 촉발한 물가 급등 진통이 커지고 있다. 어딘가 막혀 밀려오는 수요를 충족하지 못해 발생하는 공급망 차질은 언젠가는 해소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시점이다. 적어도 내년이 되면 ‘끝’이 올 것이라고 말하던 중앙은행들의 자신감마저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이다. 물가 안정 시점이 ‘내년→내후년’으로 또 미뤄지는 상황이 올까 봐 전세계가 걱정하는 분위기다.
미국 노동부는 10일(현지시각)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6.2% 상승했다고 밝혔다. 1990년 11월(6.3%) 이후 30여 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미국의 10월 물가는 높을 것으로 전망됐으나 시장의 예상(5.9%)보다 상승 폭이 컸다. 물가 상승 항목도 심상치 않았다. 상반기 물가 급등세를 이끌던 중고차 및 트럭 가격 상승률이 26.4%를 기록한 가운데 에너지 가격까지 전년 대비 30% 치솟았다. 공급 병목으로 가격이 오르는 품목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3%대 상승률을 보이고 있는 주거비도 지속해서 물가를 높일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
연준은 이미 내년까지 당분간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예측보다 상승 폭이 크고, 올라가는 기간도 길어진다면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공급 측 물가 상승은 대응하기 어렵다. 꼬인 공급망은 언젠가 풀리는데, 섣불리 수요를 꺾는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경우 문제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이에 연준은 내년 공급망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물가 상승에 인내심을 강조한다. 그러나 혹시라도 공급망 해소 시기가 내후년으로 밀리면 정책금리 인상을 더는 늦추기 힘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중앙은행 지도자들은 공급망 꼬임이 완화됨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둔화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이제 그 과정이 올해 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걸리고 2022년까지 연장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했다.
연준 내부에서도 혹시 물가 판단이 틀릴 경우 대응에 나서겠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리처드 클라리다 연준 부의장은 지난 8일(현지시각) “현 (물가) 수치가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를 중간 정도로(moderate) 오버슈팅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이라며 “내년에 이런 수치가 반복되면 그것을 정책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물가를 책임지는 중앙은행들이 이제 ‘자신과의 싸움’에 직면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들의 공급망 차질과 물가 상승에 대한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으며, 잘못된 판단이 주는 경제 충격이 과거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앙은행도 예측의 어려움을 겪는 모양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외부 전문가와 ‘경제동향간담회’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정책을 펴야 하는 중앙은행으로서 공통적으로 직면한 어려움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영역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최근 공급 병목이 전 세계적으로 큰 리스크로 부각되고 있는데, 이 현상이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겠지만 글로벌 공급망의 복잡성으로 언제쯤 해소될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과연 일시적일지, 좀 더 지속될지 내다보기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회복기는 과거에 본 적 없는 공급 병목이 나타나면서 생산 활동이 제약되고 인플레이션이 확대된 점이 특징이다”며 “우리나라도 글로벌 공급 병목의 영향과 함께 국제 유가가 상승하고 수요 측 물가압력이 높아지면서 예상보다 높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