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공급망 차질이 최악의 상황을 벗어났다는 ‘정점론’이 부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21일 “공급망 문제에 완화 신호가 있다”고 밝혔으며, 지난 19일 <블룸버그> 통신도 “미국 공급망 위기가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실제 공급망 차질을 불러온 4가지 원인을 살펴보면 원자재, 재화, 물류 등 3개 부문에서 완화 신호가 포착된다. 이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각국 중앙은행 예상대로 내년 상반기에 공급망 차질에 따른 물가 급등세가 진정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코로나19 불확실성으로 상황이 언제든 돌변할 수 있고, 고용 문제는 개선 조짐이 없다는 점에서 아직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니라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현재 공급망 차질은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분업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복잡하게 얽힌 공급망 사슬에서 여러 부분이 막힌 것이다. 최근 공급망 차질은 크게 △원자재 △재화 △물류 △고용 등 4가지 경로에서 발생하고 있다.
상품의 가장 기초적인 재료인 원자재(에너지, 비철금속, 곡물 등)부터 수급이 불안정해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경제 재개에 따른 수요 급증과 중국 및 인도의 화석 연료 재고 부족, 탄소 중립 전환 등이 주요 원인이다. 그다음 중간재, 자본재, 최종재 등 국가 간 나눠 만들고 있는 재화 단계 역시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과 신흥국이 코로나19 충격으로 부품 생산을 못하면서 공급망 교란이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차량용 반도체 부족이다.
원자재나 재화를 다음 단계 생산자나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물류도 말썽이다. 코로나19로 억눌러 있던 재화 소비가 폭발하면서 올해 물동량은 급증했다. 항만 정체가 극심해지고, 화물 트럭은 부족한 상태다. 물류 대란을 부추긴 배경에는 인력 부족도 존재한다. 코로나19 이후 항만 하역 노동자 및 이를 실어나르는 트럭 운전사들이 줄었다.
4가지 경로 중 원자재·재화·물류 등은 최근 조정 신호를 보인다. 원자재는 국제유가가 지난달 말 배럴당 84달러(WTI기준)까지 돌파한 이후 지난 23일 78.50달러로 내려왔다. 미국과 한국, 중국 등 6개국은 지난 23일(현지시각) 치솟는 기름값을 잡기 위해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하기도 했다.
석탄 가격은 지난 8월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지난달 19일 올해 초 대비 194.5%까지 급등하면서 고점을 찍었다. 그런데 이달 15일에는 중국 및 인도의 전력난 우려가 수그러들면서 고점 대비 56.4% 급락했다. 재화의 경우 아시아 지역 생산이 정상화되고 있다. 중국은 제조업을 위축시켰던 전력난이 해소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의 업무활동지수도 빠르게 개선되는 분위기다.
해상 운임 상황을 보여주는 발틱운임지수(BDI)도 지난달 7일 역대 최고치인 5650까지 치솟았다가 이달 23일엔 2715으로 ‘반 토막’ 났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시아에서 최근 몇 주 동안 코로나19 관련 공장 폐쇄, 에너지 부족 및 항만 용량 제한이 완화됐다”며 “해상 운임도 기록적인 수준에서 후퇴했다”고 말했다.
반면 공급망 차질의 마지막 원인인 고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미국·유럽·신흥국 등 각국 정부는 실업수당 등이 줄면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고령층 은퇴, 보육 부담에 따른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저하 등은 구조적인 문제로 단기간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노동력 부족은 내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현재 조정 신호를 보이는 공급망 경로들도 언제든 다시 불안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공급망 차질 원인 중 원자재, 재화, 물류 등에서는 정점을 찍고 완화되는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며 “다만 고용 문제는 현재 진행형으로 부담을 주고 있으며, 혹시 신흥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강화되면 완화 신호를 보이던 경로들도 다시 불안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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