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가 안정과 경제 리스크 관리를 당면 최대 과제로 꼽았다. 고물가-고환율-부채 부실 등 경제 불안 요소가 함께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정치권의 추가경정예산 대규모 증액 요구에 부정적 뜻을 내비친다는 맥락에서 경제 위험을 강조했다는 분석도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어 “우리 경제는 회복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나, 대내외 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경기·물가·금융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취약·피해계층 지원, 경기보강을 위한 노력과 함께 국내물가 안정과 경제 리스크 관리가 1분기(1~3월) 중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대통령 선거 일정 등을 염두에 두면 사실상 부총리로서의 마지막 역할을 ‘위험 관리’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홍 부총리가 꼽은 3대 불안 요인은 실제 ‘우려’를 낳을 만한 수준이다. 우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넉달 연속 3%대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물가의 기조적 추이를 가늠케하는 ‘근원 물가’도 지난달 3%대에 올라섰다. 급등한 에너지값이 소매 제품 값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홍 부총리는 “생활물가 안정을 위해 모든 정책 역량을 투입한다. 가공식품·외식가격의 불법 또는 과도한 인상이 없도록 시장 감시 노력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강화한 공공요금 관리에서 한 발 나아가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른 부처의 힘을 활용해 민간 품목에 대한 가격 관리도 나선다는 뜻이다.
전반적인 경기 전망도 어둡다. 현재 경기 국면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최근 그 방향이 엇갈리지만 6개월여 뒤 경기를 가늠케 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6월 이후 6개월 내리 하락하고 있다. 해당 지표를 작성하는 통계청은 통상 이 지표가 6개월 연속 떨어질 경우 경기가 확장에서 수축으로 전환하는 신호로 파악한다. 금융 불안을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인 원-달러 환율도 최근 들어 부쩍 상승(원화 가치 하락)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달 원-달러 환율은 한 달 전에 비해 11원(월 평균 환율 기준)이나 뛰어올랐다. 통상 금융 시장 불안이 커지면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달러를 선호하는 터라 원-달러 환율은 상승한다.
홍남기 부총리는 “리스크 요인 점검과 금융불균형 시정, 실물시장 파급 영향, 국채시장을 포함한 채권시장 동향과 외환시장 상황 등을 점검하기 위해 11일 확대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총재와 함께 하는 확대거시경제금융회의는 5개월 만에 열릴 정도로 드문 자리인 터라 그만큼 위험 관리 대응에 홍 부총리가 힘을 싣는 모양새다.
정부 내에선 홍 부총리가 최근 들어 부쩍 위험 관리를 강조하고 나선 배경에 대해 추가경정예산안 증액 여부를 놓고 여야 정치권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는 최근 국회 예산안 심사 자리에서 대규모 증액을 위해 적자 국채가 발행될 경우 국가 신용등급 방어가 쉽지 않다는 언급까지 한 바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기재부 간부는 “대규모 추경을 위해선 적자국채 발행을 크게 늘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채 금리가 뛸 수 있다”며 “홍 부총리가 리스크 관리를 강조하며 채권시장도 언급한 것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은 정부 추경안(14조원)보다 20조~35조원 더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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