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타이어 사외이사인 최홍엽 조선대 법학과 교수. 노조 추천으로 선임된 노동이사다. 최홍엽 교수 제공
최홍엽 조선대 교수(법학과)는 금호타이어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민간 기업에서는 이례적으로 노동조합 추천에 따라 이사회 멤버로 합류했다. 2018년의 일이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이던 금호타이어가 그해 중국 타이어 제조업체 ‘더블스타’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한 방안의 하나였다. 최 교수는 지난해 연임해 2024년까지 사외이사로 일하게 된다.
최 교수는 지난 13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노조 쪽에서 복수로 후보를 추천하고, 노사정위원회와 산업은행(주채권은행)의 조정, 결정에 따라 회사 측에서 저를 (사외이사로) 임명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무리한 인수·합병을 추진하다 위기에 빠지고 금호타이어도 여기에 휘말려 워크아웃(채무조정) 처지에 놓인 상태였다. 일반 민간 기업에서 노조 추천을 받은 인사가 이사로 선임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드물다. 언론사로는 한겨레신문사가 노조 추천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금융권에선 지난해 9월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처음으로 노조 추천 사외이사가 생겨났다.
재계 쪽의 반발을 사고 있는 ‘노동이사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이다. 노동자 대표 중에서 이사회 구성원을 뽑는 방식이다. 2016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공공기관에 한정된 것이긴 하나, 올 하반기에는 노동이사 선임 사례가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개정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공기업 36곳과 준정부기관 96곳이 이사회에 노동 이사를 포함해야 한다. 노조(또는 근로자 대표, 근로자 과반 동의)가 2명 이내로 후보를 추천하면 기관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심사를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하는 방식이다. 경영자총협회(경총)를 비롯한 재계 쪽은 여기에 거센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간기업으로 확대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물론이고, 노동이사제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가뜩이나 심한 노사 대립을 더 격화시킬 것이라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노동이사와 유사한 처지의 최 교수는 “(사외이사로 일을) 시작할 때 노동 측만 대변하지 않고 회사 전체 발전에 필요한 그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고, 노조 측도 (이런 뜻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호타이어가 잘 돼야 지역도 발전하고, 노동자 권익도 보장되니, 그런 관점에서 제 역할을 하고 종업원을 대변하겠다는 뜻을 지금도 갖고 있다”며 노동 이사를 “노사 간 대화의 가교 역할”로 규정했다.
― 3년 남짓 실제로 일해본 뒤 든 생각은?
“외적, 내적 (경영) 환경 모두 좋지 않았다. 회사 인지도가 추락했고 안팎에서 경쟁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여러 번 경험하고 많이 느낀 게 노사 양쪽 다 고생을 참 많이 한다는 점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중간에 불거지고 미·중 갈등 격화로 수출 여건이 나빠졌다. 물류비는 폭등했다. 그 사이에 미국이 (타이어) 관세를 대폭 높인 일도 있었다. 통상임금 문제가 불거지고 원재료(고무) 가격이 급등했다. 한고비 넘으면 또 다른 고비를 맞는 식이라 노조나 경영진 모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 이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느 정도인가?
“이사 1명이 이사회 결정을 좌우하거나 바꿀 수 없다. 금호타이어 이사가 9명이고, 사용자 측이 8명이다. 기본적인 한계는 있다.”
최 교수는 일정한 한계를 지닌 노조 추천 이사의 의미를 두 가지로 짚었다. 회사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점을 첫째로 들었다. “회사법은 사외이사의 지위를 견고하게 규정하고 이사회가 주요한 결정을 하도록 규정하는데, 이 규정을 지키도록 함으로써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다. 다른 하나는 노사 간 “대화를 촉진하는 채널” 구실이다. “노조(금속노조 금호타이어 지회)가 회사 측에 비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대신 답변을 들어줄 수 있다. 거꾸로 회사의 어려움을 노조에 전달할 수 있다. 이사회에 참여하니 기초 데이터를 보고받고, 그 구체 자료를 갖고 얘기하니 최소한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제 공으로만 돌릴 수 없겠지만, 그동안 소소한 시위 외 노사 간 관계는 큰 갈등 없이 이어져 왔다”며 베트남 공장의 증설 문제를 한 예로 들었다. 금호타이어 노사는 베트남 공장 증설 방안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회사 쪽은 미국 쪽의 고율 관세 부과를 피하고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베트남 공장 증설을 추진했고, 노조 쪽은 여기에 강하게 반대했다. 베트남으로 생산 물량이 더 돌아가는 만큼 국내 쪽 고용 안정을 위협한다는 이유였다.
회사 쪽은 “한국의 공장은 고품질 생산 기지 역할을 하도록 하고 고용 안정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고 공언함으로써 노조 쪽을 설득해 지난해 3월 이사회에서 이 사안을 일단락지었다. 최 교수는 “노조도 (베트남 공장 증설의) 불가피성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며 “증설하는 쪽으로 선택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영진의 판단에 합리성이 있다는 뜻을 노조에 전달하고, 대신 경영진에는 고용보장에 더 명시적인 의지를 밝히도록 촉구했다는 전언이다.
― 재계 쪽은 노동이사제가 노사 대립을 격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측과 대화를 이어나갈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 안정적인 채널을 두는 게 좋다고 본다. 대립각을 낮추기 위해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조 측도 ‘싸움닭’을 보내 논리로 격파하겠다는 식으로는 안 된다. 결연하게 주장할 때 하더라도 필요한 경우엔 타협하고, 회사 정보나 영업기밀을 유지해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 과정서 노사 관계 전반이 성숙해질 수 있을 거라 본다.”
최 교수는 “따라서 노동이사제를 공공기관에 이어 민간 부문으로 확대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쪽이다. “주주권도 중요하고 지배주주의 우위를 인정하나, 최소 범위에서 노동자들도 이사회에 참여해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시 모델처럼 이사 재임 기간 노조 탈퇴를 의무화하거나, 금호타이어처럼 제3자를 후보로 추천하는 식으로 다양하고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 관련 전문가나 퇴직 임직원 중에서 뽑을 수도 있을 거다. 꼭 외국 제도대로만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유연한 체계를 강구해 폭넓게 시행하면 좋지 않겠나 싶다.”
― 재계 쪽에선 노동이사제를 처음 도입한 독일과 우리의 사정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1951년 독일서 처음 도입할 당시 연합국 점령이란 특수 상황이었다는 것인데.
“독일이나 일부 나라에서만 시행하고 있는 게 아니다. 프랑스, 그리스를 포함해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도입해 1~2명의 노동 이사의 이사회 참여를 의무화하고 있다. 서울시가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당시 학자들과 공동 조사를 벌여 확인한 외국 입법 예가 있다.”
재계 쪽의 반대 논리 중에는 ‘노동이사제’가 이른바 ‘오너 경영’의 장점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이에 “초기엔 저도 회사 사정을 잘 모르고, 사용자 측도 지배주주가 바뀌는 과정이라 이사회 진행에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한 두 차례 진통에 그쳤다”며 “사외이사들이나 경영진이 해결하려 들면 (의사결정의 신속성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가 어려움에 빠진 건 신속한 의사결정을 못해서가 아니라 과거 오너(박삼구 회장)의 무리한 인수·합병 결정이었음을 돌아봐야 한다는 설명을 여기에 덧붙였다. 최 교수는 “거버넌스(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갖추고 효율성을 꾀하되 심각하고 중요한 사안은 여러모로 검토를 거쳐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보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 이사는 기왕의 감사제도 같은 장치와 더불어 적절한 견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금호타이어가 맞닥뜨린 최대 현안은 광주 송정역 근방에 있는 주력 공장을 ‘빛그린산단’(광주 광산구)으로 옮기는 일이다. 이는 기존 공장 터의 용도변경이라는 노사 공통의 숙원과 연결돼 있는 동시에 자동화 수준의 제고로 이어져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사안이다. 노동자 쪽 처지에선 복잡미묘한 문제다. 최 교수는 “용도 변경, 고용 안정을 위해 사외이사들이 협력하고, 노동자 측도 고용 문제가 해결되면 빨리 이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현안 해결을 위해 뜻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