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내 유명 식품기업 창업주 2세인 ㄱ씨는 국외에 유령 현지법인을 세운 뒤 내부거래를 꾸며 유보금을 빼돌렸다. 이 돈으로 국외에서 부동산을 사고팔아 막대한 차익을 남기고, 이를 현지에 거주하는 자녀에게 현금으로 증여하고 세금도 신고하지 않았다. 자녀들은 다시 고가아파트를 산 것은 물론 유령 법인으로부터 체류비마저 받아 생활했다.
#2. 국내 유명 식음료기업 사주 ㄴ씨는 국외에서 같은 사업을 하는 아들을 지원하려고 현지에 이름뿐인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현지법인 설립·운영 명목으로 보내진 자금은 아들의 사업자금은 물론 고가아파트를 취득하는 데 쓰였다.
국세청은 이런 불법 국제거래를 이용한 역외탈세 혐의자 등 44명을 확인하고, 이들이 탈루한 세금을 추징하기 위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22일 밝혔다. 코로나19로 부의 집중과 자산 격차가 커진 상황에서 일부 자산가들이 국제거래를 악용해 재산은 불리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 ‘부자탈세’를 심층 분석한 결과다.
우선 ‘꼭두각시’ 현지법인을 이용한 부자탈세 유형으로 조사 대상에 오른 자산가는 21명이다.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보유한 자산가이자 기업가인 ㄷ씨가 조세회피처에 직원 명의로 법인을 설립해 국내 법인으로부터 컨설팅비나 대여금 명목으로 거액을 받아 빼돌리는 식이었다. 이들은 모두 모두 수십억원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런 행위는 수년 동안 이뤄졌고, 탈세 추정액이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국세청은 설명했다.
또 국내에 고정사업장이 없는 것처럼 위장해 법인세를 탈루한 혐의로 다국적기업 13곳도 세무조사 대상이 됐다. 이들은 국내 자회사에 임원을 파견해 국내 사업을 지배·통제하고 있으면서도 단순 업무지원만 하는 것처럼 꾸미거나, 6개월 이상 건설공사를 수행하는데도 설계·제작, 설치, 감독, 애프터서비스(A/S) 등 계약을 쪼개 고정사업장을 은폐했다. 비거주자나 외국 법인이 국내에 고정사업장이 있으면 사업장과 관련한 모든 소득을 합산해 법인세 등을 신고해 납부해야 한다. 매년 1만여개의 외국계 기업이 법인세를 신고하고 있지만, 이들처럼 고정사업장이 없는 것처럼 위장하면 신고 의무가 없다. 아울러 현지법인을 청산한 것처럼 위장해 투자액을 전액 손실 처리하는 등 불공정한 자본거래 등으로 법인자금을 빼돌린 법인 10곳도 조사를 받게 됐다.
김동일 조사국장은 “역외탈세는 탈세 전 과정이 처음부터 치밀하게 기획돼 계획적으로 실행되는 반사회적 행위인 만큼 새로운 탈세 통로나 부의 대물림 창구가 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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