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빠른 속도로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짙어지면서 미국 정책금리가 한국 기준금리보다 높아지는 ‘금리 역전’에 대한 우려가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보다 위험한 투자처인 한국은 금리 매력까지 떨어질 경우 외국인 자금이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투자자금이 두 나라의 금리 수준 뿐만 아니라 환율과 국가 신인도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이동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금리차에만 주목한 불안은 과도하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두 나라 간 금리가 역전됐던 과거 시기에도 외국인 자금은 오히려 순유입(유입량이 유출량 보다 많다는 뜻)한 사례가 있었다.
미국 정책금리가 한국 기준금리보다 더 높았던 최근 시기는 2018년 3월부터 2019년 10월까지다. 13일 한국은행의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유출입 자료’를 보면, 해당 기간 외국인 자금은 증권과 채권 투자자금 합해 총 187억달러가 순유입됐다. 구체적으로 15개월은 순유입, 5개월은 순유출됐다. 투자 대상을 기준으로 보면, 외국인 주식 자금은 총 13억달러 순유출 됐으나 채권 투자자금은 200억달러 순유입됐다.
조영무 엘지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 금리 역전시) 금리 측면에서 미국 투자가 유리해 보이지만, 환율 측면에서는 국내 투자가 더 유리한 경우가 있다”며 “투자자들은 금리 역전 여부 만큼 환율에 따른 기대 투자 수익률도 매우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한-미 금리 역전으로 한국 투자에 대한 이익이 감소해도 원화 강세가 예상돼 환 차익이 기대되거나 환헷지 과정에서 추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면 자금을 빼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금리 차만 보는 것이 아니라 환헷지 수수료인 스왑레이트 기준 수익과 비용도 고려한다”며 “직전 한-미 금리 역전 때 외국인들은 우리 경제의 금리 매력이 낮아도 환차익을 높이면서 채권 투자를 늘렸다”고 밝혔다.
과거 사례를 보면 금리차, 환율뿐만 아니라 재정 상황, 경상수지, 국가신용등급 같은 요소들도 외국인 투자 자금의 향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금리 매력이 다소 떨어져도 다른 경제 여건이 좋다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실제 2018~2019년 우리 경제는 역대 최고 국가 신용등급 유지, 경상수지 흑자, 통합재정수지 흑자, 외환보유액 4천억달러 돌파 등을 기록하면서 외국인 자금 유출을 일부 방어했다.
따라서 한은이 향후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미국과의 금리 역전에 따른 자금 유출 가능성을 지나치게 우려하기 보다는 국내 경제 여건에 좀 더 집중해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한-미 금리가 역전된다고 해서 당장 외국인 자금이 유출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시각”이라며 “과거 외국인들이 환율, 국가 신인도 등 복잡한 방정식으로 자금을 운용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도 최근 비슷한 시각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는 지난 1일 “한-미 금리 격차에 따른 자본 유출 가능성은 금리뿐만 아니라 환율에 대한 기대심리, 경제 전체 기초체력(펀드멘탈) 등 여러 변수에 달려 있어 반드시 유출이 금방 일어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직전 한-미 금리 역전 때와 현재 경제 상황의 같은 점과 다른 점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8~2019년과 달리 최근 원-달러 환율은 1230원까지 치솟으면서 원화 약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연준이 22년 만에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과거보다 금리 역전 폭도 커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경상수지 흑자 폭이 축소되고, 재정수지가 악화된 점도 부정적인 부분이다. 이는 예전보다 외국인 자금 유출을 자극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반면 여전히 경제 성장률과 국가 신용 등급, 외환보유액 등이 전 세계에서 양호한 수준에 속한다는 점은 외국인 자금 유출 방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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