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물가 급등을 체감하고 있는 것과 달리, 제조기업들의 80% 이상은 원자재 가격 급등을 아직 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상태라는 조사 결과가 제시됐다. 기업 쪽의 엄살이거나, 아니면 추가적인 가격 인상을 예고하는 신호일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조기업 30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해 14일 내놓은 설문 결과를 보면, 원자재 가격 인상 부담을 제품 가격에 반영했는지를 묻는 말에 ‘충분히 반영했다’는 응답은 15.8%였다. ‘일부만 반영했다’ 50.5%, ‘조만간 반영할 계획’ 23.5%였다. ‘현재로서는 반영할 계획이 없다’고 응답한 기업 10.2%를 포함할 때 84.2%가 제품 가격엔 아직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셈이다.
소비자들의 물가 체감과 너무 동떨어진 결과인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한상의 최민희 연구원은 “기업들의 입장이 소비자들과는 다른 사정도 있고, 비투비(B2B·기업 간 거래) 기업들을 주로 대상으로 삼은 조사이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 실시한 이번 조사 대상에는 소비재 기업들도 일부 포함돼 있지만, 반도체·전자·석유화학·조선·건설·철강 업체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는 설명이다.
원자재 가격 인상을 제품 가격에 일부만 반영했거나 반영하지 않은 기업들이 가장 큰 이유로 꼽은 것은 ‘매출 감소 우려’(42.7%)였다. ‘거래처와 맺은 사전 계약에 따라 당장 올리기 어렵다’ 32.5%, ‘미리 확보한 원자재 재고 여유가 있어 아직 올리지 않고 있다’는 응답은 16.5%였다.
원자재 가격이 지금처럼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대응 방안을 물은 항목(복수 응답)에선 ‘제품 가격 인상’(78.9%)을 꼽은 기업이 가장 많았다. ‘전반적인 비용 절감 병행’ 50.3%, ‘원자재 대체 검토’ 23.0%, ‘계획 없음’ 4.3%, ‘판매(납품) 중단’ 2.6% 순이었다. 정부에 바라는 대책으로는 ‘전반적인 물가 안정’(39.5%),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 지원’(36.5%), ‘납품단가 합리적 조정 지원’(9.9%), ‘관세 인하 등 비용 부담 완화’(9.5%), ‘운영자금 지원’(4.6%)을 들었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영향 조사에서는 75.6%가 ‘제품 생산 단가가 크게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조금 증가했다’ 21.4%, ‘거의 영향 없다’는 답은 3.0%였다. 응답 기업의 66.8%는 최근 상황이 계속된다면 ‘올해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제품을 팔수록 손해를 입어 영업적자가 불가피할 것’이란 답도 31.2%에 이르렀다.
김영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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