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21년 11월5일 유튜브 방송 <삼프로TV>에 출연해, 한국 기업에는 법적으로 ‘주주 보호 의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유튜브 <삼프로TV> 화면 갈무리
식품회사 사조오양이 3월 말 정정공시한 사업보고서 중 ‘임원 현황’에는 감사위원을 겸하는 사외이사로 모두 4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이 가운데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나머지 3명과 달리 지배주주의 반대편에 선 소액주주 쪽을 대표하고 있다. 지난해 도입된 ‘3%룰’에 힘입어 대주주의 반대를 뚫고 상장회사 이사회에 진입한 드문 사례다.
3%룰은 상장사의 감사(감사위원)를 맡는 사외이사 선임 때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행사하도록 제한한 규정이다. 사조오양 최대주주인 사조대림은 60.53%의 지분을 갖고 있었음에도 3월 주총 때 이 교수의 감사위원 선임 안건에 대해선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해당 안건에서 인정되는 의결권은 전체주식의 42.47%였다. 표 대결에서 사조대림 쪽은 자체 3%를 포함해 모두 6.1%의 지분을 확보한 데 그친 반면, 반대쪽 소액주주를 규합한 사모펀드 운용사 차파트너스 쪽은 12.7%를 얻어 이 교수 선임 건을 통과시켰다.
이상훈(53) 교수는 18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사외이사제는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국내에선 지배주주가 이사들을 자기 원하는 대로 임명하고 있다”며 “소수파 대표를 세울 수 있는 집중투표제도 거의 활용되지 못해 3%룰이 제한적이나마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행 사외이사제의 개선 방안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선관 의무)를 모든 주주의 (총합적 이익이 아닌) ‘비례적 이익’을 지키는 쪽으로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와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 민자금융팀 전문위원 등을 거쳐 2015년부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사조오양과 연결된 계기는?
“로스쿨 교수로 재직하며 회사법 관련 논문을 쓰고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 주장을 해왔다. 논문 작성을 기준으로 하면 14년 전부터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별 주목을 못 받다가 삼성물산 합병, 엘지(LG)화학 물적 분할에서 불거진 문제로 공감을 얻게 됐다. 그러다 보니 사조오양 소액주주 운동하는 이들이 사외이사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해왔던 거다.”
비례적 이익이란 주주의 권리는 보유 주식 수에 비례해 인정된다는 뜻이다. 주주 평등의 원칙과 같다.
― 재계 쪽 우려와 달리 3%룰에 따른 선임 예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왜 그런가?
“여러 요건이 충족돼야 가능하다. 일반 주주의 공분을 살 정도로 대주주의 잘못이 뚜렷하게 부각돼야 한다. 그 환경 속에서 주주들의 표 모집이 이뤄질 수 있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위임장을 받는 게 쉽지 않다. 사람(주주)을 만나기도 어렵고, 또 쉽게 위임하려 하지 않는다.”
사조오양 주총에선 전자서명으로 서면 위임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설계·개발돼 있는 스마트폰 ‘앱’을 활용함에 따라 기술적인 난점을 풀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이사회 멤버(구성원)가 된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표 대결하는 구조에서 승패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지만,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배주주 반대편 이사) 1명이 들어가면 존재 자체로 (지배주주에겐) 부담이 될 거다.”
― 사외이사제가 국내에 도입(1998년)된 지 2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사외이사제가 미국에서 만들어진 게 본래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국내에선 지배주주가 이사들을 자기 원하는 대로 임명하고 있다. 본래 취지에 맞는 사외이사가 거의 없다. 소수파 대표를 세울 수 있는 집중투표제도 거의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소유 구조에서 비롯되는 한계다. 지배주주가 사외이사 뽑는 건 갓 쓰고 자전거 타는 꼴이다.”
이 교수는 “30% 지분을 가진 지배주주가 100% 가깝게 권리를 행사하는 건 회사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모든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위해 업무를 처리하도록 보호 의무를 상법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모든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지키는 쪽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상법은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만 지게 돼 있다.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 상충 문제가 자주 빚어지는 배경의 하나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는 없기 때문에, 이사의 행위로 인해 일반 주주들이 피해를 보더라도 회사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한 이사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법적 환경이다. 엘지화학을 비롯해 여러 건의 물적 분할 과정에서 실제로 생겨난 일이다.
― 비례적 이익 보호를 의무화한다면 물적 분할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가?
“특정 거래는 된다, 안된다 식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비례적 이익이 보호되는지가 관건이다. 물적 분할을 하는 과정에서 실체적, 절차적 공정성이 지켜지는지가 중요하다. 예컨대, 물적 분할 상장 때 신주인수권을 일반 주주에게 우선 배정한다든지, 그에 더해 지배주주의 지배권 강화에 따른 일반 주주의 가치 훼손에 대한 대가 지급이 보장되는지에 따라 다르다.”
이 교수는 “미국에선 대법원 판례를 통해 모든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지키도록 하고, 충실 의무를 지우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2004년 고등법원에서 신주 발행 등 주식을 다룰 때 주주를 보호하지 않고 회사만 보호하면 ‘배임’이라는 판례가 나온 바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판례는) 특정 주주만의 이득을 위해 일반 주주가 털려선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아주 유명한 판례였는데, 이게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이사는 회사 사무 처리를 하는 것이지, 주주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니라 주주에 대한 의무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 교수의 비례적 이익 보호 주장은 법 개정안 발의로 이어졌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비례적 이익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가 인정되면 물적 분할 등 자본거래 과정에서 이사의 행위가 회사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더라도 주주 사이의 부의 이전으로 일반 주주에게 피해를 초래하면 일반 주주는 이사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