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7.3원 오른 1,272.5원에 마감했다. 연합뉴스
수출 호조세에도 에너지 값 급등 탓에 수입액이 크게 늘어나 교역 조건이 9년여 만에 가장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강세 영향으로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두면 교역 조건은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2022년 3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을 보면, 지난 3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87.30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6.3% 하락했다. 지난해 4월부터 12개월 연속 하락이 이어지면서 지수 수준은 2012년 11월(86.88) 이후 가장 낮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수출 1단위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을 가리킨다. 지수 87.30은 상품 100개를 수출해 번 돈으로 살 수 있는 수입품은 87개라는 얘기다. 수출품 평균 가격보다 수입품 평균 가격이 더 비싸 벌어지는 현상으로,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자재 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이런 교역 조건 악화는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무역수지 집계에서도 확인된다. 이달 들어 20일까지 누적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6.9% 늘었음에도 무역수지는 51억9900만달러였다. 수출 호황에도 수입액이 더 크게 늘어났다는 얘기다. 이에 올해 들어서만 월간 기준 무역적자는 지난 1월과 3월 두 차례에 이른다.
이런 양상은 앞으로 더 강화될 공산이 높다. 수입품 가격에 영향을 주는 원화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어서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72.5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원화가 달러 당 1270원을 웃돈 건 코로나19 확산 초기 경제 충격이 왔던 2020년 3월19일(1285.7원) 이후 2년 1개월만이다.
통상 원화 가치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도 가져오는 터라 무역 수지 개선의 불쏘시개 구실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현 상황은 이런 긍정적 현상이 나타날 공산이 작다는 점이다. 우리의 수출 경쟁국의 통화 가치가 원화보다 더 하락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엔화는 이날 20년 만에 가장 낮은 달러당 130엔에 이르고 있으며, 중국 위안화 역시 2년만에 가장 가치가 떨어진 상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겨레>에 “우리나라 수출품은 주로 중국 및 일본 제품과 경쟁하는데, 위안화 및 엔화도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가격 경쟁력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며 “환율 상승으로 인한 기업들의 수입 물가 부담이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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