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충격에 “IMF때 못잖게 심각” 그런데 왜 이사 보수는 올리나?
현대·기아차의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이 22일 임금 동결을 결의하며 비상경영 의지를 다졌다. 이 소식에 현대·기아차 납품업체들이 바짝 긴장하는 것은 물론, 임금협상을 앞두고 있는 다른 제조업체들 쪽에도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경영위기 정말 심각한가?=현대·기아차는 이날 서울 양재동 본사 대강당에서 1천여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위기 극복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어, 올해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의 임금을 묶기로 했다. 이와 함께 △원가 절감과 품질 확보 △생산성 향상 활동에 매진 △혁신과 변화 △경영체질 개선 △고객들에게 최고의 만족 제공 등의 실천과제도 채택했다. 임금 동결 대상 과장급 이상 임직원 수는 모두 1만1천여명이다. 2005년 영업이익 30% 줄어
과장급 이상 “임금동결” 결의 현대차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에도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이 ‘임금 30% 반납’을 결의하는 방식으로 위기극복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현대·기아차의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은 올해 경영여건이 외환위기 직후에 못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판단하는 셈이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연평균 환율이 950원으로 떨어질 경우 매출이 2조3천억원 주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인데다 올해도 줄어들 경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은 물건너간다”며 “미래 자동차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국외 생산기지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 데도 현재 매출과 이익구조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2조3146억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속사정을 뜯어보면 수익구조가 더 악화됐다. 이 순이익은 현대캐피탈 등 계열사 출자지분의 평가액 상승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순수 생산과 판매활동에서 나오는 영업이익은 1조3841억원으로 30.1%나 줄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2003년 8.9%에서 지난해 5%선으로 3년 연속 하락세다. 현대·기아차는 수출이 전체 매출의 76%에 이르고 부품 국산화율이 97%를 넘기 때문에 환율하락의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최근의 매출과 수익구조에서 이런 취약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비상경영은 불똥 넘기기’=현대·기아차의 경영여건이 점차 악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환율하락 등에 따른 손실을 일방적으로 납품업체나 임직원들에게만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 관계자는 “최근 현대·기아차가 부품업체들과 납품단가 협상을 하면서 워낙 까다롭게 단가를 매기는 바람에 2, 3차 중소 하청업체들이 연쇄 단가인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며 “사실 환율 하락의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는 현대차나 350여 1차 납품업체보다 5천곳이 넘는 2, 3차 하청업체들의 사정이 더 심각하다”고 전했다. 이사7명 보수 70억서 100억으로
노조 “임협 앞두고 희생 강요 엄포” 경영위기의 돌파구를 임금 억제에서 찾는 것도 전근대적인 방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의 전체 매출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3.4%(2004년 기준)에 불과하다. 과장급 이상 임금동결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가 1인당 평균 1천만원으로 치더라도 총액은 1100억원 정도다. 이는 올해 주총에서 주주들에게 줄 현금 배당액(3423억원)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또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임금 동결을 선언한 가운데 정작 정몽구 회장 등 이사의 보수한도는 올해 크게 올라갈 예정이어서 최고경영자의 비상경영 의지에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이날 낸 공시에서 이사 7명의 보수한도를 지난해 70억원에서 올해 100억원으로, 42.8%나 높이는 안건을 통과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노조는 “회사가 관리자들을 동원해 임금동결을 결의하고 이를 홍보하는 행위는 오는 4월 임금협상을 앞두고 노조의 희생을 강요하려는 엄포용”이라고 비난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