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가구의 17.2%가 적자 상황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354만 가구는 소득을 모두 동원해도 대출 상환과 필수 지출이 어렵다는 뜻이다. 갈수록 높아지는 대출 금리와 물가로 적자 가구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한국금융연구원의 ‘가계재무 상태가 적자인 가구의 특징과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2052만 가구 중 17.2%(354만 가구)는 적자 상태인 것으로 집계됐다. 적자는 소득에서 필수적인 소비와 비소비 지출(세금·연금 등)에 금융채무 원리금 상환을 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상황을 말한다.
354만 적자 가구의 평균 연 소득은 4600만원이었다. 그런데 이들 가구의 평균 연간 원리금(원금+이자) 상환액은 4500만원으로 연 소득의 98%에 달했다. 빚 부담이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금융부채 규모가 소득보다 너무 큰 것이 가계 적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적자 가구 중에는 금융부채 규모가 소득의 5배가 넘는 가구도 19.3%(68만가구)을 차지했다. 흑자 가구에서는 해당 가구 비율이 3.6%에 불과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일부 적자 가구는 부족한 생활비를 전·월세보증금을 털어 충당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354만 적자 가구 가운데 18.6%(66만 가구)는 주택 임대로 받은 보증금이 있었다. 이들 가구가 보증금을 생활비로 쓴다면 전·월세 가격 하락시 세입자에게 돈을 돌려주기 어려워지면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보고서는 “적자이면서 임대를 놓은 가구가 다음 세입자로부터 보증금을 받아 이전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줄 요량이면, 이전 세입자의 보증금은 모두 본인 적자를 메우는 데 충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전·월세 가격 하락 시 전출하는 세입자에게 보증금 상환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경제 충격 파급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적자 가구가 훨씬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면서 대출 금리 또한 연일 치솟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마다 전체 가계의 연간 대출 이자 부담만 3조3천억원씩 증가한다. 차주 1인당 연간 대출 이자는 평균 16만4천원씩 늘어난다. 시장 투자 전문가들은 작년부터 0.25%포인트씩 총 4차례 기준금리를 올린 한은이 연내 2∼3차례 더 추가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 1800조원까지 불어난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소비자물가상승률까지 4% 후반대로 올라가면서 가계 살림살이를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보고서는 “향후 물가 상승 및 금리 상승으로 경제 상황이 전개될 경우 필수 소비지출 및 이자 지급액 증가로 인해 흑자 가구의 가계재무 상태도 취약해질 수 있다”며 “흑자 여부를 막론하고 가계 차원의 자구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고 강조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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