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노 동국제강 마케팅팀장이 지난 25일 스틸샵 및 국내 철근 유통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국제강 제공
“온라인으로 생필품을 사듯이 철강도 온라인 쇼핑으로 살 수 없을까?”
웹툰 <미생 파트2>의 등장인물 장백기의 말이다. 사내벤처를 꾸리려는 상사에게 사업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철강사업부에 몸담았던 장백기는 철강제품의 온라인 판매가 어려운 이유를 나열한다. 곧 등장인물들이 사내벤처를 추진하며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웹툰 마지막에 언급된 ‘동국제강 스틸샵 관계자’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틸샵은 미생에 언급된 온라인 철강 플랫폼의 실제 모델이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 동국제강 사무실에서 이윤노 마케팅팀장을 만났다. 그는 지난해 5월 서비스를 시작한 동국제강 ‘스틸샵'을 1년째 이끌고 있다. 스틸샵은 동국제강이 만든 철근·형강 등 철강제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이 팀장은 “기존 철강제품 거래 관행을 바꾸기 위해 스틸샵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거래 관행이란 ‘담보'와 ‘외상거래'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오프라인 영업·판매 방식이다. 이 관행은 철강 전자상거래 도입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국내 철강 유통 구조를 먼저 설명했다. 철강 회사가 지역 거점 대형 유통사에 제품을 넘기면, 대형 유통사가 다시 소형 유통사에 제품을 넘긴 뒤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이 팀장은 “철강 회사는 대형 유통사가 낸 50억∼100억원의 담보금액 범위 내에서 외상으로 제품을 내어주고, 월말에 가격을 정해 지급받는 여신거래 방식”이라며 “60년 넘게 이어져 온 관행으로, 선결제로 정가에 판매하는 온라인 서비스를 도입하기 어려운 배경”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투명하지 않은 거래 질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팀장은 “정보가 잘 공개되지 않아 가격에 거품이 끼고 가격 질서가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소형 유통상들이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에 제품을 구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윤태호 작가가 카카오웹툰에 연재 중인 ‘미생 파트2’ 128수의 한 장면. 윤태호·슈퍼코믹스스튜디오 제공
만약 선결제 문화가 자리를 잡는다면 철강사는 굳이 담보를 잡아둘 이유가 없다. 대형 유통사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담보를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다. 제품 가격도 미리 결정되기 때문에 매출·수익 등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유통 방식도 투명해진다. 하지만 수십년간 이어진 관행을 단숨에 뒤집는 게 쉽지 않다. 기존 대형 유통사의 반발도 변수다. 소형 유통사가 대형 유통사를 건너뛰어 직접 철강회사와 거래한다고 하니, 이를 반길 리 없다.
그래서 대형 유통사의 판매가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했다. 대신, 고객 맞춤형 서비스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철근 소량 배송, 재고 현황 공개, 사이즈별 제품 구매 등이다. 단순 중개 업무만 해오던 대형 유통사들이 그간 제공하지 않던 서비스다.
지난 1년 성과도 나쁘지 않다. 서비스 시작 1년 만에 1천개 법인이 가입했고, 판매량도 1만5천t에 달한다. 재구매율도 70%가 넘는다. 이 팀장과 팀원들이 전국을 돌며 수집한 고객들의 목소리가 서비스에 반영된 결과다. 그는 “소규모 건설 현장과 소형 유통점을 방문해 이야기들 들어보면 스틸샵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목말라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스틸샵이 동국제강이 생산한 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서비스라는 점을 주목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 팀장은 “철강 유통시장을 장악하려고 스틸샵을 내놨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만약 수익만을 원했다면 다수 판매자를 입점시켜 수수료를 받아 돈을 버는 오픈마켓을 기획하지 않았겠냐”며 “스틸샵이 불러올 나비효과가 국내 철강 거래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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