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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K-드라마 수출, 상사맨 씨 뿌리고 번역 전사들 꽃피워

등록 2022-07-08 09:00수정 2022-07-08 09:22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CULTURE & BIZ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어 한류 드라마 수출의 문을 활짝 연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MBC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어 한류 드라마 수출의 문을 활짝 연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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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출발점을 이야기할 때면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빠지지 않는다. 1997년 이 드라마가 중국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을 통해 큰 인기를 끌면서 한류의 존재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KBS는 1980년대부터 <떠돌이 까치> <아기공룡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같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홍콩과 유럽 등에 수출했다. 1990년대 초 지상파 방송사들이 방송 콘텐츠 수출을 위해 상사맨들을 영입하고 KBS영상사업단, MBC프로덕션, SBS프로덕션 등을 설립하면서 드라마 수출의 물꼬가 터졌다.

사실 방송사들은 드라마 수출에 큰 관심이 없었다. 방송사 수익의 대부분이 광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가 국외에서 인기를 끌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1990년대 한국 드라마의 질적 수준이 높아지는 두 사건으로 여러 변화가 나타났다.

하나는 민주화였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 전반의 민주화와 더불어 드라마 제작 현장에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됐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피하기 어려웠다. 군사정부는 드라마의 주제, 소재, 각본까지 꼼꼼히 검열했다. 제작자들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멜로나 사극, 가족 드라마 정도로 장르를 알아서 제한한 측면이 있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런 관행이 사라졌고, 김대중 정부에선 분위기가 더 자유로웠다. 방송사 제작자들은 앞다퉈 새로운 주제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당시 관계자들이 “정부의 무관심이 드라마 산업에 새롭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현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지원도, 간섭도 없이 방송사 자율에 맡기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방송의 상업화가 빨라진 것도 드라마 품질 향상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1990년대 들어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으로 광고시장이 급속히 커졌다. 더 많은 광고를 얻기 위해 방송사는 시청률 경쟁을 벌여야 했다. 특히 1991년 민영방송 SBS의 개국으로 지상파 3사 체제로 재편되면서 시청률 경쟁이 가열됐다. 드라마는 중단기적으로 시청률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무기였다. 방송사들이 시청률의 노예가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쟁의 힘은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최초 거점 대만

외국 시장도 달라지고 있었다. 1990년대 아시아 미디어 시장은 격변기를 맞았다. 대만도 37년 동안 지속됐던 계엄령이 1987년 해제되면서 언론 자유가 확대되고 상업 미디어가 늘어났다. 아시아 신흥국들 모두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크게 늘고, 대중문화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공통점을 갖게 됐다.

아시아 나라들의 ‘TV 속 풍경’도 달라졌다. 전통적으로 아시아 나라들의 국산 프로그램 편성 비율은 70% 내외로 서유럽이나 중남미보다 높았다. 식민지를 거치면서 서구 미디어 상품이 자국 문화에 해가 된다고 인식한 측면이 있었고, 정부가 이데올로기적 통치를 하려는 경향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위성방송, 케이블방송 등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방송 채널이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프로그램 수요도 커졌다. 국내 프로그램만으로는 채널을 채우기 어려웠다. 외국 프로그램 공급자에게 사업 기회가 늘어나고 있었다.

대만이 대표적이었다. 정치·경제·사회의 실권을 쥔 대륙 출신 외성인들이 1960년대부터 지상파방송을 설립해 국민당에 유리한 뉴스를 주로 방송했다. 이에 대항하는 원주민 출신 본성인들은 케이블방송으로 맞대응했다. 대만에는 지형 때문에 지상파가 수신되지 않는 지역이 많아 중계하는 유선방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터넷동영상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은 학원 좀비물 &lt;지금 우리 학교는&gt; 스틸컷. 넷플릭스
인터넷동영상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은 학원 좀비물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컷. 넷플릭스

1987년 계엄령이 폐지된 뒤 대만 정부는 1993년 케이블방송을 합법화했다. 그 결과 케이블채널이 100여 개로 늘어났고, 프로그램 수급 문제가 생겼다. 대만 정부가 케이블방송 연성화를 위해 ‘국산 프로그램 20% 의무 편성’ 조건도 없애자 값싼 외국 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리는 사업자가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기폭제가 된 것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였다. 한국, 인도네시아, 타이 등이 환율 폭등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방송 프로그램을 많이 수입하던 나라에 환율 위기는 치명적이었다. 대만도 자국 통화가치가 15% 이상 떨어져 인기 높은 일본 프로그램을 계속 수입하기 어려웠다. 대체품을 찾던 대만 방송사 관계자들의 눈에 중국에서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들이 들어왔다. 한국 드라마는 일본 드라마와 비슷한 스타일이면서 가격이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외환위기 영향으로 수출의 필요성이 더 커진 한국 방송사들도 적극적이었다.

한국 드라마의 대만 수출은 홍콩을 거쳐 중국, 동남아 국가까지 연쇄적으로 이뤄졌다. 1970년대 후반부터 홍콩은 중국 본토, 대만, 동남아 국가 등에 중화권 방송을 전송하는 구실을 해왔다. 아시아를 뒤덮은 외환위기가 한국 드라마 산업의 경쟁력을 발견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자막 올린 한류 팬

2003년 <겨울연가>, 2005년 <대장금> 등이 큰 히트를 치면서 한류 드라마 수출은 지속됐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비가 점점 올라가 저가 판매로 유지하던 아시아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서구 방송사에 판매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부터 미디어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2010년대 들어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된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파일의 용량이 너무 커 이전에는 인터넷으로 보려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구축된 뒤 그 시간이 확 줄었다. 이에 따라 외국에서 인터넷으로 한류 드라마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났다. 개별 국가에서 한류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 수는 아주 적다. 과거에는 국가 단위 방송사를 대상으로 영업했기 때문에 이들만 바라보고 수출을 추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들을 세계적으로 모으면 큰 집단이 된다. 인터넷이라는 요술 방망이가 각 나라의 흩어져 있던 한류 드라마 팬들을 하나의 취향 공동체로 묶어냈다. 북미와 유럽 등 그동안 넘볼 수 없던 시장에서도 한류 드라마 팬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세계인이 한류 드라마를 즐기는 데 걸림돌이 있었다. 언어의 장벽이었다. 이를 넘어서려면 번역된 자막이 필요했다. 방송사가 공식 수출한 게 아니라 외국 시청자들끼리 파일을 공유하는 사례가 많아 자막은 더 귀했다. 목마른 한류 팬들은 ‘스스로’ 우물을 팠다. 자발적으로 번역한 자막 파일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장을 포착해 자막을 제공하는 드라마 서비스도 개발했다. ‘드라마피버’(dramafever.com)나 ‘비키’(viki.com) 같은 플랫폼이 그것이다.

드라마피버는 2009년 재미교포 박석과 박승이 창업한 한국·아시아 드라마 스트리밍 서비스였다. 두 사람은 미국에 한국 드라마를 불법으로 공유하는 사이트가 20여 개나 되는 것을 보고 합법 사이트를 만들고 이른 시일 안에 자막을 붙여 서비스했다. 재미교포 벤처인 호창성, 문지원이 2007년 설립한 사이트인 비키는 회원번역가나 자원봉사자를 모아 실시간으로 드라마 자막을 올렸다.

외국 팬들이 이런 수고를 하면서 한류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다양했다. 과거 우리 드라마가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로 꼽히던 요소, 예를 들어 충성심·헌신·희생 같은 동양적 가치관이 잘 녹아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한류 드라마는 섹스·노출·폭력 등에 대한 심의가 엄격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너무 완벽하고 복잡한 미국 시리즈물과 달리 한류식 로맨틱코미디에 담긴 관습적 표현이 오히려 공감을 더 잘 이끌어낸다는 평가도 받았다.

평평한 운동장

반도체, 자동차, 휴대전화 등 대한민국의 대표 수출상품은 대부분 대기업이 주도해 발전시켰다. 그러나 한류 드라마가 국외로 진출하는 과정에선 대기업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수출의 물꼬를 트고 아시아 시장 확대를 밀고 나간 것은 작은 무역 중개인과 방송사의 상사맨 후예들이었다. 이들 누구도 더 앞선 출발선에 서 있지 않았고, 더 우위를 차지하지도 않았다. 정부의 기여도 세세한 계획과 지휘가 아니라 기간 인프라를 정비하고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었다. 기울지 않은 운동장에서 드라마 제작자들은 동등하게 경쟁했고, 이런 경쟁의 힘으로 한류 드라마는 빠르게 발전하고 진화했다.

국외시장 개척을 추동한 것은 위기 속에 조금씩 열린 기회였다. 아시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는 일본 상품의 대체 가능성을 열어줘 1차 시장 개척을 가능하게 했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에 따른 인프라 환경 변화는 인터넷 플랫폼을 통한 팬들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게 해줬다. 이후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산업의 확대로 새로운 창이 열렸을 때도 한류 드라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게 채찍질한 것은 재미없는 드라마는 도태되도록 가차 없는 비판을 날려온 눈 높은 한국 시청자였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zkim@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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