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경영자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4.2년이지만, 실제로 체감하는 이들의 임기는 더 짧다. 반면 외국계 기업에는 10년 넘게 장수하며 자리를 지키는 최고경영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10년 이상 최고경영자를 역임한 스타키코리아 심상돈 사장과 한국얀센 박제화 사장이 공통적으로 꼽은 ‘장수의 비결’은 철저한 실적 위주의 평가와 아이디어가 샘솟는 주인의식, 사회에 대한 책임감 등이었다.
스타키 코리아 심상돈 사장
영어현장 누비는 ‘아이디어 샘물’
‘세계 보청기업계의 거물’
스타키코리아 심상돈(49) 사장은 세계 보청기업계 1~2위 회사인 스타키에서 윌리엄 오스틴 회장과 제리 루지카 사장 다음의 서열 3위인 보청기 업계의 ‘거물’이다. 1996년부터 10년째 사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주일에 두세번은 현장에서 영업활동을 한다.
“까다롭고 어려운 거래처는 저에게 달라고 합니다. 업무의 기본인 영업을 통해 자연스레 소비자들의 요구와 현장의 어려움을 알 수 있죠.” 그를 포함한 스타키코리아의 모든 직원은 ‘멀티플레이어’다. 영업사원이 직접 보청기를 수리하고, 바쁘면 회계 담당 직원이 보청기 생산라인에 투입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임원들도 모두 담당 거래처가 있다. “우리 직원들은 세계 최고입니다. 전세계 스타키 지사 가운데 하루 만에 첨단 맞춤형 보청기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84년 수입 대리점으로 보청기와 인연을 맺은 그의 사업방식은 항상 남달랐다. 남들이 단순히 판매를 할 때 그는 하얀 가운을 입고 상담을 했다. 96년 스타키코리아가 세워진 뒤 맞춤형 고급 보청기 시장을 넓히기 위해 1년 동안 소비자 잘못으로 보청기를 훼손하거나 잃어버리더라도 무상수리를 해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첨단 맞춤형 보청기
하얀 가운 입고 상담 판대
어려운 거래처 자청 소매 성공담 업계의 전설 “보청기는 노인이나 쓰는 것이라는 편견을 깰 필요가 있었어요. 국내에서 보청기가 필요한 사람이 50만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7만명만 보청기를 쓰거든요. 특히 청각장애 어린이들 같은 경우 보청기를 어렸을 때부터 써야 언어발달이 가능합니다.” 해마다 매출은 두자릿수 성장을 거듭했지만 ‘아이디어 덩어리’인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99년 그는 본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타사의 인공와우(귓속에 이식하는 소리전달 기기)를 판매해 성공을 거뒀다. 스타키코리아는 99년 소매업에도 진출했다. “도매상들은 자신들 매출이 줄까봐 안 좋아했죠. 하지만 우리가 소매를 시작하니까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며 도매 매출도 덩달아 오르는 거예요.” 스타키코리아의 소매 성공담은 영문 매뉴얼로 만들어져 본사에도 올라갔을 정도로 업계의 ‘전설’이 됐다. 한사람이 여러가지 일을 하고, 실시간으로 모든 사람의 실적이 공개되며, 주요 거래처에 한 주라도 방문을 하지 않으면 경고등이 켜지는 회사인 스타키코리아 직원들의 노동 강도는 엄청나다. 하지만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데는 높은 연봉 이상의 이유가 있다. “우리 회사는 항상 공부하는 회사입니다. 토요일에도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모든 직원과 자녀의 대학원 학비까지 전액 지급합니다.” 스타키코리아는 설립 이래 노인과 청각장애 어린이 등 사회공헌 사업에 매출의 1.5%를 쓴다는 원칙을 어겨본 적이 없다. “눈이 안 보이면 사물과 멀어지지만, 귀가 안 들리면 사람과 멀어진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도우면서 돈도 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청기 사업을 하면서 항상 행복했고요. 앞으로도 15년은 최고경영자를 더 할 자신이 있습니다.”
한국얀센 박제화 사장
동료와 일을 너무 사랑하기에
1명 뽑는데 1시간 인터뷰
위기 닥쳐도 신뢰로 극복
철저한 실적평가 정착
이익 사회환원 적극 나서 “당신은 저를 사랑할 수 있나요?” 한국얀센 박제화(55·?5c사진) 사장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던지는 질문이다. 당혹스러워하는 지원자에게 그는 묻는다. “당신은 주위 사람들과 일을 정말 사랑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까?” 얀센의 인터뷰는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직원 1명당 입사 전 평균 8.8시간의 인터뷰를 하는데, 이 중 지원자 1명마다 따로 진행되는 사장 인터뷰만 한시간이다. 하지만 박 사장은 이조차 “평생을 함께 할 동료들을 뽑기에는 긴 시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국얀센에서 93년부터 무려 13년째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켜온 박 사장은 역설적으로 최고경영자의 길을 꿈꿔본 적이 없다. 그의 성공 비결은 다름아닌 ‘재미’와 ‘사랑’이다.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일을 좋아하려고 항상 노력했어요. 세상의 모든 것은 좋아하려고 마음먹으면 좋아지게 돼 있거든요.” 한국얀센은 지난 13년 동안 견실한 성장을 거듭해 왔다. 매출은 세배가량 늘었으며, 판매중인 40여종의 의약품 가운데 단 한 품목을 제외한 모든 제품이 업계 1위다. “사람들이 어떻게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냐고 물어보면 저는 거꾸로 ‘철저한 실적평가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회사에서 최고경영자가 더 장수한다’고 대답합니다.” 박 사장은 “최고경영자의 임기가 적어도 10년은 돼야 책임지고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련도 있었다. 2000년 회사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한 제품에서 부작용이 발견돼 생산을 중단했을 때였다. 갖가지 소문이 나돌았지만 박 사장은 직원들에게 “철수도, 해고도, 월급 삭감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2년 만에 기존 매출을 회복했다. 박 사장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혁신’이라는 말도 쓰지 않는다. ‘기본기에 충실하는’ 그의 방식은 꾸준한 실적평가와 보상을 통해 사람들의 창의력을 끌어내는 것이다. 일례로 얀센의 경기도 공장은 높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중국보다 생산성이 높다. 이유는 직원들에게서 샘솟는 아이디어. “일년에 300여건의 제안이 들어옵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백미러를 달면 한사람이 두사람의 몫으로 일할 수 있어 효율이 두배가 되는 식입니다.” 한국얀센은 연구개발에도 적극적이다. 2007년까지 신약 임상시험 프로젝트에 7천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인데, 이는 한국이 미국 식약청(FDA)이 인정하는 높은 수준의 임상시험 역량을 갖추게 된다는 의미여서 뜻깊다. 박 사장은 93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존슨앤드존슨 계열사의 사회공헌을 책임지며 외국계 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북한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 “존슨앤드존슨의 기업 철학인 ‘크레도’에 따라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이익의 일정 부분을 꼭 돌려줘야 합니다.” 박 사장은 “제약업체는 신약 개발을 통해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며 “업계 1위 탈환도 목표지만 그 못지않게 한국에서 가장 좋은 회사, 아름다운 회사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글 서수민 기자,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까다롭고 어려운 거래처는 저에게 달라고 합니다. 업무의 기본인 영업을 통해 자연스레 소비자들의 요구와 현장의 어려움을 알 수 있죠.” 그를 포함한 스타키코리아의 모든 직원은 ‘멀티플레이어’다. 영업사원이 직접 보청기를 수리하고, 바쁘면 회계 담당 직원이 보청기 생산라인에 투입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임원들도 모두 담당 거래처가 있다. “우리 직원들은 세계 최고입니다. 전세계 스타키 지사 가운데 하루 만에 첨단 맞춤형 보청기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84년 수입 대리점으로 보청기와 인연을 맺은 그의 사업방식은 항상 남달랐다. 남들이 단순히 판매를 할 때 그는 하얀 가운을 입고 상담을 했다. 96년 스타키코리아가 세워진 뒤 맞춤형 고급 보청기 시장을 넓히기 위해 1년 동안 소비자 잘못으로 보청기를 훼손하거나 잃어버리더라도 무상수리를 해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첨단 맞춤형 보청기
하얀 가운 입고 상담 판대
어려운 거래처 자청 소매 성공담 업계의 전설 “보청기는 노인이나 쓰는 것이라는 편견을 깰 필요가 있었어요. 국내에서 보청기가 필요한 사람이 50만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7만명만 보청기를 쓰거든요. 특히 청각장애 어린이들 같은 경우 보청기를 어렸을 때부터 써야 언어발달이 가능합니다.” 해마다 매출은 두자릿수 성장을 거듭했지만 ‘아이디어 덩어리’인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99년 그는 본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타사의 인공와우(귓속에 이식하는 소리전달 기기)를 판매해 성공을 거뒀다. 스타키코리아는 99년 소매업에도 진출했다. “도매상들은 자신들 매출이 줄까봐 안 좋아했죠. 하지만 우리가 소매를 시작하니까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며 도매 매출도 덩달아 오르는 거예요.” 스타키코리아의 소매 성공담은 영문 매뉴얼로 만들어져 본사에도 올라갔을 정도로 업계의 ‘전설’이 됐다. 한사람이 여러가지 일을 하고, 실시간으로 모든 사람의 실적이 공개되며, 주요 거래처에 한 주라도 방문을 하지 않으면 경고등이 켜지는 회사인 스타키코리아 직원들의 노동 강도는 엄청나다. 하지만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데는 높은 연봉 이상의 이유가 있다. “우리 회사는 항상 공부하는 회사입니다. 토요일에도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모든 직원과 자녀의 대학원 학비까지 전액 지급합니다.” 스타키코리아는 설립 이래 노인과 청각장애 어린이 등 사회공헌 사업에 매출의 1.5%를 쓴다는 원칙을 어겨본 적이 없다. “눈이 안 보이면 사물과 멀어지지만, 귀가 안 들리면 사람과 멀어진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도우면서 돈도 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청기 사업을 하면서 항상 행복했고요. 앞으로도 15년은 최고경영자를 더 할 자신이 있습니다.”
위기 닥쳐도 신뢰로 극복
철저한 실적평가 정착
이익 사회환원 적극 나서 “당신은 저를 사랑할 수 있나요?” 한국얀센 박제화(55·?5c사진) 사장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던지는 질문이다. 당혹스러워하는 지원자에게 그는 묻는다. “당신은 주위 사람들과 일을 정말 사랑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까?” 얀센의 인터뷰는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직원 1명당 입사 전 평균 8.8시간의 인터뷰를 하는데, 이 중 지원자 1명마다 따로 진행되는 사장 인터뷰만 한시간이다. 하지만 박 사장은 이조차 “평생을 함께 할 동료들을 뽑기에는 긴 시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국얀센에서 93년부터 무려 13년째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켜온 박 사장은 역설적으로 최고경영자의 길을 꿈꿔본 적이 없다. 그의 성공 비결은 다름아닌 ‘재미’와 ‘사랑’이다.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일을 좋아하려고 항상 노력했어요. 세상의 모든 것은 좋아하려고 마음먹으면 좋아지게 돼 있거든요.” 한국얀센은 지난 13년 동안 견실한 성장을 거듭해 왔다. 매출은 세배가량 늘었으며, 판매중인 40여종의 의약품 가운데 단 한 품목을 제외한 모든 제품이 업계 1위다. “사람들이 어떻게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냐고 물어보면 저는 거꾸로 ‘철저한 실적평가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회사에서 최고경영자가 더 장수한다’고 대답합니다.” 박 사장은 “최고경영자의 임기가 적어도 10년은 돼야 책임지고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련도 있었다. 2000년 회사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한 제품에서 부작용이 발견돼 생산을 중단했을 때였다. 갖가지 소문이 나돌았지만 박 사장은 직원들에게 “철수도, 해고도, 월급 삭감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2년 만에 기존 매출을 회복했다. 박 사장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혁신’이라는 말도 쓰지 않는다. ‘기본기에 충실하는’ 그의 방식은 꾸준한 실적평가와 보상을 통해 사람들의 창의력을 끌어내는 것이다. 일례로 얀센의 경기도 공장은 높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중국보다 생산성이 높다. 이유는 직원들에게서 샘솟는 아이디어. “일년에 300여건의 제안이 들어옵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백미러를 달면 한사람이 두사람의 몫으로 일할 수 있어 효율이 두배가 되는 식입니다.” 한국얀센은 연구개발에도 적극적이다. 2007년까지 신약 임상시험 프로젝트에 7천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인데, 이는 한국이 미국 식약청(FDA)이 인정하는 높은 수준의 임상시험 역량을 갖추게 된다는 의미여서 뜻깊다. 박 사장은 93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존슨앤드존슨 계열사의 사회공헌을 책임지며 외국계 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북한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 “존슨앤드존슨의 기업 철학인 ‘크레도’에 따라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이익의 일정 부분을 꼭 돌려줘야 합니다.” 박 사장은 “제약업체는 신약 개발을 통해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며 “업계 1위 탈환도 목표지만 그 못지않게 한국에서 가장 좋은 회사, 아름다운 회사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글 서수민 기자,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