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칸의 케이티앤지(KT&G) 경영권 위협을 계기로 제기된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수단 마련에 대해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가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박병원 재경부 차관은 2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정부 안에서 (적대적 인수합병 방어수단) 대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 “한 두 가지 사례가 있다고 어느 한쪽으로 갑자기 제도를 바꾸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의무공개 매수제 등 경영권 방어장치 마련에 나서겠다는 금감위의 최근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한겨레> 3월1일치 1면 참조) 금융당국 간 입장차=재경부는 전부터 박 차관이 밝힌 정책방향을 고수해왔다. 1주일 전인 지난달 23일 정례 브리핑에서도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야 한다”며 “거론 중인 대책들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언급했다. 재경부가 기회있을 때마다 ‘선진 금융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해외자본과 국내자본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온 것과 궤를 같이한다. 개방과 해외자본 유치 등 글로벌 스탠다드에 무게를 둬서, 어느 정도의 불안요소는 끌어안고 가는 것이 실보다 득이 크다는 게 재경부의 시각이다. 그러나 시야가 국내시장으로 좁혀질 수 밖에 없는 금감위로서는 태생적으로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요소에 더욱 민감하다. 윤증현 금감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자본시장 포럼에서 “적대적 인수·합병 방어책을 검토해보겠다”고 한 데 이어 지난달 28일에도 김용환 금감위 감독정책2국장이 공식브리핑에서 “국가 기간산업이나 민영화된 공기업에 대해 의무공개매수 제도 부활 등 경영권 방어책 도입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선 금융당국 간에 항상 일치된 목소리를 낼 순 없지만, 시장을 상대로 서로 상반된 얘기를 거듭하는 것은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적대적 인수합병 방어책 문제없나?=박 차관은 “인수합병 제도는 공격자와 방어자 간 균형이 필요하다”며 “방어자를 너무 편들면, 경영진의 자세가 해이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만 국민연금 등 연기금 등이 국내 기간산업 관련 기업들의 주식을 적극 사들여,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방어막은 물론 국내 경영진에 대한 견제장치로도 활용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도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이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적대적 인수합병이 많이 일어나 경영자들이 경영권 방어에만 급급해 사업을 못한다면 방어장치 강화를 생각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동안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가 통틀어 2건(소버린과 아이칸)인 상황에서 방어장치 강화를 논하는 건 이르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유럽 일부 국가는 민영화된 공기업·석유회사·기간산업에 대해선 황금주(적대적 인수·합병 거부권)와 차등의결권을 주는 곳도 있으나, 황금주의 주체는 국가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은 민영화하면서 정부가 황금주 한 주를 가졌다. 우리는 기간산업의 상당수가 민영화되어 있어, 이러한 황금주 도입이 결국 기존 경영진만 보호하는 장치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태호 박현 기자 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