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각)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린 미국 워싱턴 디시(DC)의 국제통화기금(IMF) 본부 1층 회의장 앞에 주요국 관료와 취재진이 모여있다. 박종오 기자
13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워싱턴 디시(DC)의 국제통화기금(IMF) 본부 1층 회의장 앞에 세계 각국의 관료들과 취재진 100여명이 모여있었다. 이날 이곳 회의장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는 애초 낮 1시30분 종료 예정이었다. 그러나 회의가 20분 넘게 길어지며 밖에서 기다리던 이들도 수근대기 시작했다.
“주요 7개국(G7)과 러시아 간 신경전이 심상치 않은가 봐요.” 현장에서 만난 정부 관료가 회의장 분위기를 전했다. 낮 1시52분 회의장 문이 열리고 주요국 재무장관들은 굳은 얼굴로 걸어 나왔다. 서방을 대표하는 미국의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미간을 찡그린 채 말없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올해 주요 20개국 의장국인 인도네시아의 스리 물랴니 인드라와티 재무장관은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주요국들의 지정학적 분열 극복에 “매우 큰 격차”가 있다고 말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13일(현지시각)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 종료 직후 무거운 얼굴로 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날 주요 20개국 재무장관들은 회원국 간 합의문(코뮈니케) 채택에 실패했다. 세계 경제의 위기 원인을 놓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시해야 한다는 미국·영국·독일 등 7개국의 요구를 러시아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주요 20개국 회의는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공동 성명서를 낼 수 있다. 이날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부 장관은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현장에서 만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회의 분위기를 묻는 기자 질문에 입을 꾹 다물었다. 한국 정부 고위관계자는 “의장국인 인도네시아가 이렇게 끝내긴 너무 아쉬우니 회원국들 간 이견이 없는 다른 의제들을 중심으로 합의 사항을 어떻게 발표할지 이메일로 논의하자고 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주요 20개국 재무장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열린 올해 4월과 7월 회의에서도 합의문을 채택하지 못했다. 세계 경제의 침체 우려가 커지고 저소득 국가들이 부도 위기를 겪고 있지만, 주요국들의 ‘각자도생’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를 계기로 1999년 출범한 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번번이 빈손으로 끝나며 국제 공조 체제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생겼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현지에서 만난 전직 경제부처 고위 관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 세계 경제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주요 20개국 협의체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당장 다음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하는 주요 20개국 정상 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의 정상회담 여부를 놓고 각국이 날선 반응 보이며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글·사진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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