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은 매년 봄과 가을 24개 이사국 대표들이 참석하는 총회(국제통화기금위원회·IMFC)를 연다. 사실상의 주주 총회다. 세계 경제 침체 우려가 커진 올해 10월 총회에서는 크게 2가지 변화가 두드러졌다.
국제통화기금위원회는 지난 14일(현지시각) 발표한 의장 성명서를 통해 “우리의 우선 순위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싸우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인상을 통한 물가 안정 역할을 강조하고, 정부의 재정 정책은 고물가에 어려움 겪는 취약계층을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재정·통화 정책의 일관성에 방점을 찍었다. 중앙은행이 발등에 떨어진 불인 고물가를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올리는데, 정부가 돈을 푸는 ‘엇박자’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과 1년 전 성명서에서 확장적 재정·통화 정책을 강조했던 것과 딴판이다.
이는 달라진 경제 환경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고착화한 저성장, 저물가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엠에프는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에 경제의 수요에 불을 지피는 확장 정책을 권고해 왔다. 예를 들어 이 기구는 지난 2012년 10월 펴낸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재정의 승수 효과(정부 지출의 생산 증대 효과)가 우리가 추산했던 것보다 2배 이상 컸다”는 연구 결과를 최초로 발표했다. 정부 지출을 죄는 재정 긴축 및 건전성 강화 조처가 경기 침체를 부를 수 있다는 의미다. 더는 낮추기 어려운 정책금리를 대신해 재정 확장 정책을 각국에 권고해온 배경이다.
그러나 이 기구는 이번 보고서에선 “코로나19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영국·일본 등의 대규모 재정 지출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했다. 각국 정부의 재정 부양책이 수요 회복을 촉진해 결과적으로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는 이야기다. 이런 시각을 반영해 아이엠에프는 각국이 고물가에 대응하려면 “통화 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하고, 재정 정책은 통화 정책의 긴축 효과를 떨어뜨려선 안 된다”며 달라진 정책 권고를 내놓고 있다.
환율과 국제수지·금융 안정 등을 지원하며 유동성 위기를 겪는 국가의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소방수’ 역할을 자처해온 아이엠에프의 역할 확대도 눈길을 끈다. 이 기구는 중·저소득 국가 140여곳의 빈곤 감소, 기후 변화 대응 등을 위해 최장 20년간 장기 저리 대출을 지원하는 재원인 회복·지속가능성기금(RST)을 올해부터 운용하는 데 이어, 식량위기 대응을 위해 최장 1년간 자금을 빌려주는 별도 대출 창구도 새로 만들기로 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아이엠에프 총재는 14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의에서 많은 사람들이 높은 비료 가격을 내년의 잠재적 위험으로 언급했다”며 “높은 식품 가격에 직면한 국가에 긴급 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선 외환위기 당시의 구조조정을 계기로 부정적 인식이 강한 아이엠에프가 최근 저소득국 채무 탕감, 자본이동 규제 강화와 같은 이례적인 조처를 넘어서 식량위기와 불평등 완화, 기후 변화 및 디지털 전환 대응 등 전방위로 보폭을 넓히는 셈이다. ‘경제 위기 소방수’가 ‘세계 경제의 해결사’로 변신을 꾀하는 모양새다. 이 기구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저소득 국가 지원 역할을 하는 세계은행 출신의 현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면서 “‘원래 하던 일이나 잘 하자’며 아이엠에프의 역할 확대와 진보 쪽으로의 전환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이도 있다”고 귀띔했다.
워싱턴/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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