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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대기업의 기술탈취…이기기도 어렵고 이겨도 이긴 게 아니더라

등록 2022-10-23 15:00수정 2022-10-24 02:51

한진엔지니어링 사례로 본 실상
“배상 체계 개선 필요”
한진엔지니어링의 비산먼지 저감설비. 석탄 이송 장치에서 생겨나는 분진을 억제하는 장치로, 특수 노즐로 소용돌이를 만들고 안개 분사를 하는 방식으로 먼지 발생을 줄이도록 설계돼 있다. 한진엔지니어링 제공
한진엔지니어링의 비산먼지 저감설비. 석탄 이송 장치에서 생겨나는 분진을 억제하는 장치로, 특수 노즐로 소용돌이를 만들고 안개 분사를 하는 방식으로 먼지 발생을 줄이도록 설계돼 있다. 한진엔지니어링 제공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피해 실상이 세상에 제대로 드러나는 건 드문 일이다. 대기업 쪽으로 기울어진 원·하청 불평등 관계 탓에 애초 문제 제기조차 어렵고, 막다른 골목에 몰려 법적 다툼으로 이어간다 해도 실태를 명확히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더해 피해 사실 확인 뒤 구제받기까지 또 장구한 세월이 걸리고 추가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한다는 더 원천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한진엔지니어링 창업자 허인순 대표가 당한 일은 숱하게 많은 기술유출 피해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 한국남동발전이 얽혀 있는 한진엔지니어링 ‘옥내저탄장 분진 저감설비’ 기술유출 혐의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산업기술범죄수사팀 수사를 거쳐 이달 중 기소 단계에 들어갈 예정인 것으로 23일 파악됐다.

<한겨레> 확인 결과, 이 사건에 얽힌 시공업체 ㅎ사 직원은 배임수재 혐의로 지난달 구속됐다. 검찰 쪽은 한진엔지니어링과 경쟁 관계인 ㄹ사 기술담당 이사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기술보호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다수의 남동발전 관계자들이 기술 유출 관련 지시를 하는 등 권한을 남용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을 탈취당해 피해를 보았다는 허 대표 쪽의 주장이 상당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지난 6월 <한겨레>의 관련 보도에 남동발전 쪽은 “몇몇 직원이 개인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을 뿐”이라며 회사 차원의 기술유출 혐의에 대해선 전면 부인한 바 있으며, 지금도 같은 태도다. 남동발전 쪽은 “저희는 밑(하청 협력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기술을 넘겨받거나 할 위치가 못 된다”며 “수사 결과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진엔지니어링 사건에 대한 수원지검의 수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8월이었다. 허 대표 쪽의 고소에서 비롯된 게 아닌 인지 수사였다. 허 대표 사연이 중소벤처기업부 주최 행사에서 대전 한 대학의 교수를 통해 국가정보원에 전달되고 국정원 내사를 거쳐 검찰로 연결됐다. 검찰 이첩 전 5개월가량 진행된 국정원 내사에서 이미 ‘산업범죄’로 규정된 터였다. 허 대표는 해당 기술이 ‘남동발전 및 협력사 관계자들을 통해 일본 ㅇ사로 흘러가 일부 변형된 상태로 국내 ㄹ사의 일감 따내기에 활용됐다’는 사실을 검찰에 참고인으로 불려가 조사받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했다.

해당 기술은 노즐로 물안개를 만들어 발전소 옥내저탄장의 먼지를 줄이도록 설계돼 있다. 한진엔지니어링이 한국기계연구원과 공동으로 개발해 2017년 남부발전 삼척그린파워발전소 현장에 처음 적용했으며, 이듬해 특허 및 성능 인증까지 받았다.

허 대표는 모두 네 차례에 걸친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남동발전 쪽이 시공사인 ㅎ사로 하여금 ㄹ사의 기술을 적용해 계약을 맺도록 했으며, 애초 계약 금액 23억원에 설계변경을 통한 증액분이 7억원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했다. 남동발전 옥내저탄장에 먼지 저감 시설을 설치하는 해당 공사는 2020년 이뤄졌다. 설계변경에 따른 증액분을 빼더라도 공사 대금이 과한 수준이라고 허 대표는 평가했다. 한진엔지니어링 기술을 처음 적용한 삼척그린파워 관련 공사 대금은 14억4천만원이었다. 공사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설치 노즐은 삼척 쪽이 990개로 고성 쪽(600~700개 사이)보다 많았다는 점과 맞물려 의문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허 대표는 2001년 창업해 2020년에는 매출을 47억원까지 올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개점휴업 상태”라고 했다. 한때 15명에 이르던 직원 수는 2명으로 줄었다. 원청인 남동발전과 기술유출 시비로 얽히는 바람에 수주를 받지 못했고, 파장이 다른 발전사들로도 이어진 탓이었다. 허 대표는 “기술유출 사실이 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역량 부족으로 공사를 따지 못하고선 상대 업체를 음해 비방한다’는 식으로 매도당해 그동안 속앓이가 심했다는 것이다. 허 대표는 이번 일이 “산업계 전반에 경종을 울려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이 줄어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기 기술유출 피해 사안은 국정감사 단골 소재다. 피해가 반복되고 개선되지 않는 현실의 반영이다. 중기부 실태조사로 확인된 중소기업 기술침해 피해 사례는 지난 한 해에만 33건, 피해액은 189억4천만원이었다. 2017~2021년으로 기간을 넓혀 잡으면 280건, 2827억원에 이른다. 기술침해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당사자계 특허심판에서 중소기업의 패소율은 2021년 75%(패소 9건/심결 12건)에 이르렀다. 2018년 50%, 2019년 60%, 2020년 71.5%에서 계속해서 높아지는 흐름이다. 관련 증거 대부분이 침해자인 대기업 손에 들어 있어 증거를 수집하고 침해 사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은 현실과 무관치 않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서울대 교수 시절 이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이 장관은 한국 산업의 미래에 대한 서울공대 교수진의 제언을 담은 책 <축적의 시간> 반도체 분야에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해서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어도 구제할 방법이 별로 없다. 특허소송이 벌어지면,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벤처기업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배상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허 침해에 따른 피해액이 얼마인지 산정하도록 한 다음 이를 공증받고, 적어도 그 금액의 몇배는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었다. 7년 전의 제안은 지금도 미결 상태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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