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 ‘돈맥경화’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시장안정화 대책에서 산업은행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나 산은도 고환율과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적자로 건전성에 노란불이 켜진 데다, 주요 자금 조달창구인 채권 발행마저 여의치 않아 ‘딜레마’에 놓인 모양새다.
산은과 중소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은 지난주 4조7700억원의 채권을 발행했다. 만기가 도래한 채권의 상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새로운 대체 채권을 발행(차환)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게 이들 국책은행 쪽 설명이다. 또 국책은행들은 회사채 발행이 막혀 은행 대출 창구를 찾는 대기업,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서도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100% 정부 출연기관인 산은은 정부의 시장안정화대책에 적극 참여하고 있어 어깨가 더욱 무겁다. 금융당국이 운영하는 채권시장안정펀드 출자구조는 산은 20%·시중은행 60%·보험과 증권사 20%로 구성돼있다. 지난달 28일 3조원 규모로 캐피탈콜(투자 결정시 자금요청)이 실시돼 산은은 6천억원을 출자했다. 산은은 10조원 규모의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도 가동하고 있다. 매입 대상에 증권사 발행 기업어음에 이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피에프)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까지 포함됐다. 지난달 27일 우선 2조원을 증권사 기업어음(CP) 매입에 투입한 상태다.
그러나 산은의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올해 상반기 기준 14.85%다.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은 은행의 자기자본을 위험자산으로 나눈 비율로, 은행 건전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현재 지속되고 있는 고환율 현상은 환율이 오르면 위험자산에 포함되는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액도 늘어나기 때문에 자기자본비율 하락에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한전이 올들어 3분기까지 21조원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보고 있어, 32.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산은도 타격을 받게 됐다. 한전의 적자를 손실로 떠안게 되면 산업은행의 자기자본비율도 떨어지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 4일 내부 회의에서 “비아이에스 자기자본비율 13%를 방어하는 게 쉽지 않다”고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10.5%를 넘어야 한다.
산은의 건전성이 악화되면 공적 금융 지원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건전성이 떨어지면 기업대출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통계적으로 볼 때, 자기자본비율이 0.01%포인트 하락하면 산은 대출 여력은 2500억원 정도 감소한다.
그런데 최근 산은은 주요 자금 조달원인 채권 발행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다. 산은은 시중 은행과 다르게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20~30%에 불과하다. ‘2021년도 한국산업은행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산은이 외부에서 조달한 자금(외화 포함)에서 예수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8%에 그쳤으나, 산은이 발행하는 산업금융채는 67.1%에 달했다. 그러나 정부는 우량채가 채권시장의 수요를 휩쓸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공공기관이나 은행에 채권 발행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위기 국면에서 어쩔 수 없이 산은의 공공자금을 동원해야 한다면 엄격한 지원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산업은행을 동원해 채권을 사들이는 건 (금리를 인상하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과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설사 자금 시장의 경색을 풀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공공자금을 동원한다 할지라도 부실 우려가 큰 자산유동화기업어음같은 지원 대상은 엄격하게 골라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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