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위험 회피·원가 경쟁력 높이기는 기본
현지공장 설립·원자재 달러화 결제 늘려
현지공장 설립·원자재 달러화 결제 늘려
‘900원대 환율시대’가 굳어질 조짐을 보이면서 기업들이 활로 찾기에 바빠졌다. 지난 17일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3.80원 떨어진 971.20원으로 마감했다. 지난해 평균 환율 1020원에 견주면 50원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올 들어 석달 연속 970~ 980원대에 머물고 있다. 아무리 수출을 많이 해도 환율 하락분만큼 원가에서 고스란히 까먹게 된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19일 “올 들어 환율하락에 따른 이익감소분만 4500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수출기업들이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환율은 ‘1달러= 950원’이다. 채산성 악화로 고심하던 대기업들은 연초부터 비상경영에 돌입하거나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환리스크 집중 관리에 들어갔고, 환율변동에 무방비 상태인 중소기업들은 수출 시기를 늦추는 등 대처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엘지전자는 사내외 환율 전문가들로 ‘금융관리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인 금융팀장(상무급)을 중심으로 경제연구원과 은행, 채권, 국제금융 전문가 등 9명이 날마다 외환시장 모니터링과 헤징(환위험 회피)전략을 세운다. 엘지전자 관계자는 “외환과 금리를 비롯한 금융시장 동향과 구체적인 정보를 각 사업부와 전세계 70여개의 법인에 제공하고, 헤징 비율과 시기를 협의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환율 불안을 올해 최대 경영위협 요소로 꼽았다.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 가운데 달러 결제 비율이 80%선에 이르기 때문이다. 환율이 100원 떨어지면 가만히 앉아서 연간 1조2000억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 애초 삼성은 달러당 1000원을 연평균 환율로 가정하고 사업계획을 세웠다가 세자릿수 환율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주우식 삼성전자 아이아르(IR)팀 전무는 “달러당 환율이 900원에도 버틸 수 있도록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국외 생산확대가 기본 전략이다. 생산공장의 국외 진출로 국내 산업공동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현대차그룹은 환율 변동으로 춤을 추는 매출과 수익구조에서 벗어나려면 현지공장 설립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가전업체들도 텔레비전과 냉장고, 세탁기 등 주요 사업부문의 국외생산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조선업계는 수주이후 곧바로 선물환 거래를 해 환위험을 피해가고 있다. 조선업체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헤징에 손을 놓고 있다가 환율하락으로 막대한 환차손을 입는 뼈저린 경험을 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떨어지자 올해 중도금과 인도금의 100%를 헤지해둔 상태다.
수출시점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면서 원부자재 구매 때 달러화 결제를 늘리는 곳도 있다. MP3 플레이어 업체로 수출 비중이 90%에 이르는 엠피오는 환율 상황을 주시하며 2, 3주 단위로 수출 시점을 탄력적으로 조정한다. 회사 관계자는 “그나마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메모리를 삼성전자와 도시바에서 달러화로 전량 구입하는 덕분에 수출에서의 손해를 상쇄시키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품국산화율이 높은 수출 기업일수록 겹시름을 앓는다. 부품 국산화율이 90%인 한 전자업체 사장은 “환차손을 만회할 수단이 없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수출기업들은 환율 하락에 따른 손실을 수출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이후 원화가치의 지속적인 상승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수출기업들의 수출 가격에 대한 환율전가율은 38.1%에 불과했다. 세계시장에서 가격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물량 위주의 점유율 확보에 매달린 탓이 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위기에 봉착한 수출산업’ 보고서에서 “수출 둔화에 대비하기 위해 서비스업과 같은 내수 중심의 경제체제를 구축하고 내수 회복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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